굴..

카테고리 없음 2012. 12. 11. 16:23

 

 

굴..

 

   

[활력충전] 겨울 바다의 보약 ‘굴’…맛있게 즐기는 법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580328&

      <지난 2012년 12월 10일 KBS TV가 방영한 '굴'을 보려면 클릭하십시요>

                               

<KBS 방영화면 갈무리>                                          

 

여러분 바다의 보양식 굴을 드셔 보세요.

여유가 있어서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굴양식장이나 자연산 굴을 채취하는 곳에 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 망태기를 택배로 받아서 구워 먹고, 삶아서 까먹고, 여러가지 반찬으로 만들어 먹고, 이웃과 나누면 귀한 것이라면서 아주 좋아 합니다.

 

  굴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어린시절 좋아했던 노래 '섬집아기' 입니다. 또 하나는 조미마가 불렀던가요? 서산 갯마을(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처녀들 부푼 가슴 꿈도~"입니다.

 

 

   나는 굴이란 말을 서울에서 살게된 이후에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항시 석화(石花)였습니다. 굴은 순 우리말이겠지요? 그런데 사전을 보니 석화가 사투리는 아니군요. 내겐 굴보다 석화가 훨씬 정감이 있으니 앞으로 석화란 말을 자주 써도 될 것 같습니다.

 

    굴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내가 책장사 하면서 진도의 군내면에서 본 굴따는 아이가 생각 납니다.  학교를 다녔으니 아마 국민학교 1학년(8살)이었을 것입니다.

 

진도에서 책장사를 하던 내게 먹고 자고를 해결하는 것은 큰일이었습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걷고, 버스타고 하면서 책을 팔러 다니는데 진도읍에 숙소를 정하는 것은 시간낭비였습니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지금 책을 팔고 있는 현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진도군 군내면에 금골산이란 산이 있고 거기에 금골사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옛절과 새절 두개의 절이 있는데 그 앞마을에 이르러 그 작은소녀의 집에 묵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금골사 옛절에서 묵게 되었는데 지금도 주지스님과 전화통화가 됩니다.  올(1912년) 봄에도 통화하였는데 이제는 지도의 벽파항에서 제주도가는 배가 뜬다고 한 번 놀러 오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내가 묵은 그 집은 하루에 밥 한끼니만 사먹으면 잠은 그냥 재워준다고 하여 묵었는데 남는 방이 없어 딸아이 둘이 쓰던 방에 묵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 가운데 큰 딸은 중학생이었는데 제 부모방으로 가고 난 작은딸과 한 방에 묵기를 여러날 하면서 책을 팔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금골사 옛절에 들어 주지스님을 사귀게 되어 절로 숙소를 옮길 때까지 그 작은소녀집에 머물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느라고 지도를 보니 앞에 굴섬이라는 섬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곳이 굴의 명산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집의 국민학교 1학년인 작은소녀는 학교에 갔다 오면 굴바구니르 들고 바다로 내달렸습니다.  엄동설한 추운 계절인데도 하루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니, 마다하는게 아니라 내?겼다는 게 맞습니다. 작은소녀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공부하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책보를 놓자 말자 어서 굴따러 가라고 채근할 뿐입니다.

   그 아이는 해가 져서 어두워져서야 돌아 옵니다.

굴바구니에는 껍질을 깐 굴이 담겨 있습니다. 요사이의 굴과는 영 다릅니다. 지금은 품종개량이 되어 어느바닷가를 가더라도 당시와 같은 굴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말 그대로 토종굴인데 크기가 바둑알 보다 작았습니다.  그렇게 따온 굴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캔 굴에 합쳐져서 읍내 장터에 팔려 갑니다.

 그 아이는 굴을 캐고 왔다고 하여 편히 쉬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동생을 업어줘야 합니다. 난 책을 팔다가 대개 작은소녀가 굴바구니를 들고 바닷가에서 돌아올 시간에 숙소에 듦니다. 그러면 언제고 작은소녀의 아버지가 어서 동생 업으라는 말을 들으면서 저녁시간을 맞곤 하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시골 바닷가에서 중학교를 보낸다.

남자아이도 아니고 여자 아이를 중학교 까지 보낸 것으로 보아 작은소녀의 아버지 어머니가 교육열이 없는 분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큰딸이 그 해 중학교를 졸업하였는데 해남인가 영암인가의 어느 병원에 취직이 되었다고 아주 좋아 하였습니다. 중학교 마치고 바로 병원으로 갔으니 간호사도 간호조무사도 아닌 허드레 심부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퍽 좋아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지금은 진도대교가 생겨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도선이 없어졌겠지요?

1970년대 후반에는 오직 도선만이 육지를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진도읍에서 버스를 타면 버스가 통채로 도선에 실려 바다를 건넌 것입니다.

 

 나는 이 때 이 도선을 타고 가면서 오면서 배의 승객들에게 책을 팔았습니다.  이렇게 책을 팔았더니 입소문이나 진도의 곳곳에 책을 가지고 가니 사람들이 알아보아 돈 안들고 광고를 하는 효과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굴.

굴을 볼 때마다 그 때 그 바닷가의 작은소녀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의 다섯살 아이는 제 엄마가 자장가로 섬집아기를 불러 주었습니다. 내년(2013년)에는 여섯살이 되지만 다섯살이 꽉찬 지금도 자장가는 의례히 섬집아기 입니다. 혹시 다른 노래를 부르면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합니다.

 

아래의 ▶을 <== 클릭하면 섬집아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http://youtu.be/WEsh7E23tYs <= 대금연주 이생강님 기타 연주 김광석 합주로 듣는 섬집아기(Island Baby)  

http://youtu.be/IziZzIGzPuU <= 섬집 아기 (동요) - 박인희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이 가사는 이제는 흘러가 버린 40년 전의 작은소녀를 추억 속에서 불러 냅니다. 이제는 40대가 되어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그 때의 작은소녀가 굴과 섬집아기에 숨어 있습니다.

 

   지금(2012년) 다섯살인 아이가 세 살 때 하나로마트에 데리고 갔습니다.

쇼핑카트에 태우고 매장을 돌다가 어물전 앞에서 굴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게 굴이야 했더니, 이런~ 갑자기 아이가 '섬집아기'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세 살 어린나이이니 부끄러움도 눈치도 없이 제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매장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 노래를 부를만한 나이가 아닌데 아주 잘 부른다고 야단입니다. 그 후로 그 마트에 가면 파매사원들이 둘러 싸고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제 엄마는 그런 판매사원들을 영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아이는 노래 주문에 마다 않고 또 노래를 부릅니다.

 

  굴

바다에서 나오는 영양만점의 청정식품, 굴을 볼 때마다 추억속에 바닷가의 작은소녀가 떠오르고, 이제는 섬집아기 노래를 퍽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더욱 더욱 추억이 깊이 새겨 집니다.

 

여러분 바다의 보양식 굴을 드셔 보세요.

여유가 있어서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굴양식장이나 자연산 굴을 채취하는 곳에 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 망태기를 택배로 받아서 구워 먹고, 삶아서 까먹고, 여러가지 반찬으로 만들어 먹고, 이웃과 나누면 귀한 것이라면서 아주 좋아 합니다.

 

 굴.

섬집아기.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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