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   


 ㅡ 이상. 펌 ㅡ



그가 그렇게 대단한 가수였는지 나는 모릅니다.

요즘 왜 그의 부인과 딸이 재수사의 선상에 올랐는지도 모릅니다.


모르지만..

그량 이렇게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보며 심쿵(*)합니다.

사람이 만나고 살고 사랑하고 사별하고 하는 것은 모든 아름다움이라야 하는데..

맘대로 안 되기도 합니다.

(국어사전 심쿵 - 요즘 젊은이들이 잘 쓰는 것 같은데.. 나도 처음입니다.

1. 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대개 깜짝 놀랄만한 것을 보거나 ...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누구라도 언젠가는 배우자에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할 수 밖에 없겠지만..
혼자 사는 시간, 날짜, 햇 수가 짧아야 하는데..
긴 시간 홀로 사는이들이 적지 않으니..
더욱 이 노래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김광석은 몰라도 그 노래와 그 노랫말을 보며 마음이 스산합니다.
김광석은 하필 60대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김광석이 죽은 후 세월이 흘러 노랫말을..
80대로.. 「어느 80대 노부부의 이야기」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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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 장군의 거북선에 대한 숨은이야기는 현대에도 있습니다.

#역사정보 #임진왜란 #거북선 ㅇ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장군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장(감조군관) 체암 나대용 장군이 설계하고 건조하였습니다.


    #역사정보 #임진왜란 #거북선 ●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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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에 대한 숨은 이야기는 현대에도 있습니다.

= 거북선을 건조한 나대용.
거북선은 나대용이 10여년에 걸쳐 설계하여 1591년에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 건조할 것을 건의하였고..

조선장(감조군관)으로 임명을 받아 건조하여.. 돌격장(거북선 선장)으로 임진왜란에 종군합니다. =

박정희 대통령 때 노산 이은상은 '태양이 비치는 길로'라는 책을 썼지요.
물론 태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산과 충무공은 다 같은 덕수이씨인데 노산은 당시 덕수이씨문중 회장을 맡고 있기도 했지요.

(실제 회장이었는지는 미확인..)

노산이 거북선을 오직 이순신의 작품으로 하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체암공 나대용 장군을 아는 유림들이었지요.
노산에게 왜 역사를 속이려 하느냐? 사실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하자 상,하 두 권.. 거의 1000쪽에 이르는 책에.. 조선장造船將(*) 나대용이 거북선을 만든 내용을 겨우 한 쪽 올린 것입니다.
(조선장造船將.:배 만드는 장군.

 실제 임란당시 나대용의 직책은 감조군관監造軍官<감조 전선 출납 군병 군관(監造戰船出納軍兵軍官>)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태양이 비치는 길로'에 조선장 나대용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실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살필 때 거북선의 설계도면을 가지고 나대용이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 거북선 건조를 건의하였고..

감조군관(조선장)으로 임명 되어 거북선을 만든 것입니다.

* 네이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나대용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contents_id=GC01300815


[개설]
나대용은 전라좌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침입에 대비하여 병선 제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종제인 나치용과 함께 고향인 순천에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 지역으로 내려왔다. 나대용은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전라좌수영 수군의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군관으로 임명을 받고 선소에서 전선을 제작하게 된다.

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 선소일 것으로 추정한다. 장생포 선소는 당시 순천부 선소였고, 군내리 선소는 방답진 선소였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휘하기 쉬운 본영 선소[현재 여수 진남관 앞으로 매립된 상태이다.]에서 거북선을 제작하였을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이순신 장군이 1592년(선조 25) 3월 27일 소포[종포 지역]의 거북선에 올라 대포 쏘는 연습을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대용과 거북선의 인연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나대용은 1년여 동안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인 판옥선과 함께 거북선을 제작하였다.

[활동사항]
~ 전략 ~
32세 때인 1587년(선조 20)에 사직하고 고향인 나주로 돌아왔다. 이후, 나대용은 자신이 거쳐 하는 방 바람벽에다 거북선의 설계도를 수없이 그려 붙여 가며 거북선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낮에는 산에 올라가 재목을 베어 왔고, 밤에는 거북선 모형을 제작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 하략 ~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ㅡ 이상.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나대용 인용 ㅡㅡㅡ


이후 나대용은 창선을 만드는데..

거북선의 단점을 보완한 배로서..

당시 조정에 상주하여 선조의 윤허를 받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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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 장군의 11대조에 회원대장군 나유가 있습니다.
대한의 7대 불가사의(책이름 '한국 7대 불가사의. 저자: 김종호)'!
여몽연합군의 왜 정벌시 생환한 고려전선..

소위 신풍에 여몽연합군이 견디지 못하고 돌아 왔는데 몽골의 배는 거의 수몰이 되었으나 고려의 전선은 대부분
생환하여 이를 대한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김종호 박사가 책을 썼습니다.

여몽연합군이 왜 정벌시 고려도 전선 400척을 건조하여 참가합니다.
그 배를 건조하는 책임자가 회원 대장군 나유였고, 몽골의 배들이 수몰하였으나 고려의 배는 생환한 것입니다.

그 나유 대장군의 자손..
나유 대장군의 문중에는 '물방개의 노래'라는 시문이 전해 온다고 합니다.



구전 <물방개 노래>
ㅡ나대용 장군 13대손 나갑주 선생 제공ㅡ

빙글 빙글 돌아라
잘도 돈다 물방개야

비바람 거친 파도
걱정일랑 하지마라

크게 싸울 장수 나와
낙락장송 다듬어서

너 닮은 거북배
바다오적 쓸어낸다.

어허둥둥 좋을시고
빙글빙글 돌아라

잘도 돈다 물방개야


동신대 교수가 쓴 글에 실린 것을 가져왔습니다.

위 <물방개의 노래>
또 나유 대장군의 후손..
또 여러 기록에 전하는 바..
등을 볼 때 거북선을 건조한 사람이 나대용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성웅 이순신이 그 것을 알아 보고 건조를 승락하지 않았더라면 거북선이 탄생할 수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나대용 장군의 거북선에 이은 창선 건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후일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을 더욱 개량한 창선을 선조의 윤허를 받아 건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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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백중百中(음력 07월 15일).. ● 머슴날.. 부모은중父母恩重의 날.. 백중차례..


     7월 백중百中(음력 07월 15일)... ●    

O 머슴날.. 부모은중父母恩重의 날.. 백중차례..   


오늘이 7월 백중百中(음력 07월 15일)입니다.

1. 머슴날(=머슴 놀려주는 날)
2. 『부모은중의 날 父母恩重~』
3. 백중차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머슴날(=머슴 놀려주는 날)
머슴이 다 없어진 날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요즘은 벼농사가 워낙 철이 빨라져 벌써 벼 추수를 앞둔 시절이 되어 있지만.. 옛 시절에는 여름 내내 논일 밭일에 고된 머슴을 음식을 잘 마련하여 하루 놀려 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사진: 네이버 사진>


2. 『부모은중의 날 父母恩重~』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왜놈들이 우리 겨레가 '고려장'풍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나이가 좀 든 축인 나같은 경우는 '고름장'으로 어른들로 부터 들어서 기억을 하는 풍속이기도 한데, 그럼 백중百中이 고름장(고려장高麗葬)하는날이라고요?

틀려도 너무 많이 틀린 넘겨집기 입니다.
첫째 우리 겨레는 애초부터 고려장이란 없었습니다.
둘째 백중날이면 아버지 어머니를 업고 들로 나가 하루 즐기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고려장 시키려고 부모을 업고 산으로 드는 불효자식 모습을 연상 기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중날은 『부모은중의 날 父母恩重~』즉 아버지 어머니를 업고 들로 나가 하루를 즐기는 날인 것입니다.
나는 부모님이 모두 떠나고 안 계시지만.. 난 서울 살고 부모님은 시골에 살고.. 그러니 하필 백중날에 맞춰 집에 가기 어려워 한 달 후에 닥치는 추석날이면 집에가 아버지 어머니를 업어 드리곤하였습니다.

겸연적게 등에 업히시던 부모님이 몇 차례 되풀이 되자 잘 업히셨는데..
그렇다고 야외에 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그저 방에서 업고 마루를 지나 마당을 몇 바퀴 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정도였지만.. 퍽 좋아 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 유품을 뒤져 보니.. 어머님이 서투른 한글로 삐뚤삐뚤 '오늘은 아덜이 아버지와 나를 업어 주었다.'라고 쓴 글을 발견하고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아버님 어머님 업어 드리세요.
퍽 좋아 하십니다.
만약 함께 안 계시면 추석날이나 언제라도 만나면 업어 드리세요.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라면 산소에 성묘가면 좋지만.. 사진첩 내놓고 가족들과 아버니 어머니 얘기하고 나눠 보세요.


3. 백중차례

설이나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만 백중차례라니요?
하지만 난 오늘도 백중 차례를 모셨습니다.

백중차례


백중에는 망자의 혼과 생자의 영이 만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삶과 죽음이 만나는 유일한 공간이 굿판이라지만..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일찍 부터 백중날이면 혼과 영으로 삶과 죽음이 만나왔습니다.


그러니 난 고집스럽게 백중차례를 모시지요.
영과 혼과 얼, 얼이 깃든 곳이 얼굴이고, 얼내리를 통하여 조상의 얼을 후손에게 물려 주지만, 내가 나의 조상과 소통하는 백중차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설이나 추석 같이 요란할 필요 없습니다.
평소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먹었던 밥상, 그 밥상을 생각하고 차리면 됩니다.
물론 김치 등 차례상에 안 올리는 음식은 빼야 하겠지요.
편한 자리에 상을 차려 놓고 살아신제 하였던 것처럼 지난 1년가 집안사를 돌아가신 부모님께 한 가지씩 이야기 하여 드리는 기분으로 도란도란.. 물론 가족과 함께 해야 더 뜻이 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

조촐하게 부모님께 술 한 잔 부어 놓고.. 절을 드리고.. 영과 혼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 그 기쁨을 놓치기 싫어 난 매년 백중차례를 모십니다.


오늘 아침에 못했으면 저녁에 저녁상을 놓고 해 보세요.
가족과 함께...


백중도 지나고 점점 가을이 깊어갈 것입니다.
가을노래 들으면서...
😈 유튜브 - 분위기있는 가을 노래모음 10곡
https://youtu.be/LgTaAXI7f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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