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환단고기를 특정 종교에서 많이 연구하고 있다하여 종교적 색채를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아예 처음 부터 환빠니 민족주의에 매몰 되었느니 하면서 토론이 아닌 비난을 퍼붓는 경우 조차 있습니다.

우리 '대한국사학大韓國史學=주인재야사학主人在野史學'이 환단고기가 위서라거나 판타지라거나 종교집단

활용서라는 데 대한 해명에 매달려 본래 해야할 '기성도제사학旣成徒弟史學=강단사학講壇史學'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더는 이런 데 매달려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거꾸로 '기성도제사학'의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양 호도한채 실증이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하여 사실을 구명여 실증이 아님을 입증하고 참역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1. 환단고기 위서 운운
   이미 깨진 이야기 입니다.

2. 종교적 색채
   종교라하여 역사연구를 하지 말라 할 수는 없습니다.

🌏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닌 근거
• 파마르 고원에서 동진한 환족=밝족=밝달족=배달족=백의민족=밝의민족=대한국=한국에는 '환단고기'가 아닌

성기 등 여러서책으로 대환국=밝국=대한국의 역사가 전하여 왔고 이를 계연수 선생이 '환단고기=밝땅고기'라좋은 이름으로 묶어 간행했을 따름입니다.

• 파미르 고원에서 서진한
알타이어계 여러 국가와 민족 및 지역에 환단고기와 똑같은 내용의 국가가 발행한 역사서가 있고 서사시 형식으로 구전 되어온 구전 설화와 전설이 있으며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구이九夷와 12한국의 명칭이 현재도 알타이

어계 지역에 지명 혹은 부족명이나 지역명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 파마르 고원 동과 서에 같은 역사가 있는 이유
유목국가 유목민족은 영토가 없고 영역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땅은 여러 민족이 공유할 뿐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단고기의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가 활동영역이고 함께 생활하던 여러 민족과 국가 및 부족이 동

서로 흩어졌으나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은 스텝을 따라 이동한 후 남북으로 흩어지며 여러부족이 같은 영역과 역사를 공유하였다.>

🌏 종교적 색채
굳이 종교가 아니라도 '환단고기'는 많습니다. 역사학자들의 대부분은 종교와 무관하며 종교활동과 관계 없이 연구합니다. 최근에는 환단고기 아닌 지나의 사기 등 옛 역사서에서 환단고기와 같은 내용의 역사를 찾는 활동이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비록 춘추필법으로 지나족에 유리한 것은 부풀리거나 덧붙이고 불리한 것은 깍아 내거나 헛붙여 왜곡된 내용이 많지만 행간에 숨은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를 찾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에서 환단고기를 활용하는 것은 오불관언 하면 그만이며 종교단체가 구명한 옳은 역사를 마다할 이유 없고 그러므로 연구하는 것을 주시하거나 배척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구명: 연구하여 밝힌)

🌏 신화적 색채
• 신화에서 역사를 읽어야 합니다.
번개가 치는 것은 역사입니다. 그 번개에 벼락을 맞은 사람이 하늘에 죄를지어 벌을 받았다고하면 신화가 됩니다.


역사를 근전(근대이전 近代以前)과 근대近代로 나누는 학자가 있습니다. 제정일치 사회의 역사 기록은 신화의 관점으로 쓰였고 그렇기에 근전시대 관점에서 쓰인 신화는 역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행간에 숨은 역사를 찾아

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신화형태의 역사서는 산해경이 있습니다. 단군신화도 근전시대의 관점에서 역사를 신화의 형태로 전승한 것입니다.

역사를 신화의 관점에서 기록한 내용을 오늘날 근대 시대의 관점으로 보고 역사가 아니라 하는 것은 소중한 참역사를 놓치는 것으로 근전시대에는 역사를 신화로, 신화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전승한 것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한단고기에도 신화적 색채가 짙은 내용이 있으면 거기서 역사를 찾아 내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고조선 이전 시대에 대한 또 다른 근거
• 옥기시대
고조선문명=홍산문명 초기의 유물에서 다량의 옥기가 발견 되고 있습니다. 이를 흑옥피 문명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수달형동검=비파형동검'만해도 동검이 아닌 옥검 즉 '수달형옥검=비파형 옥검'이 발굴 되었습니다. 그래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이에 옥기시대를 편년에 넣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옥기 및 흑피옥 유물은 고조선 이전 시대의 실재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환단고기의 내용이 위서나 환타지가 아님을 나타내는 또 다른 실증입니다.


🌏 실증은 환단고기가 아니라 기성역사학이 받아야
그동안 환단고기를 위서운운한 기성사학을 실증하여 보면 오히려 허황하고 거의 허위인 증좌(*)를 실증이라 내세우지만 실은 견강부회 아전인수로 곡학曲學하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이를 구차하게 변명하거나 기존학설이라 우기고 있는 경우가 다수 나타나고 있습니다.( * 증좌 - 證左 참고가 될 만한 증거證據)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대한국사학=주인재야사학'은 '기성도제사학'의 실증에 주력하여 허위 실증을 밝혀낼 뿐 아니라 '기성도제사학'의 여러 단체와 대등한 단체를 만들어 정부와 기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여야 합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1. 환단고기 위서 운운은 이미 끝난 일로 환단고기의 내용이 지나 옛사서나 고조선=홍산문명 및 알타이어계 국가들과 민족들의 역사서 등 환단고기 밖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 환단고기는 종교와 무관하고 종교와 관계 없이 연구 되고 있으며 종교에서 활용하는 것은 오불관언 하되 연구실적의 활용을 주저할 이유는 없습니다.

3. 기성도제사학의 단말마적 몸부림에 대응하여 대한사학에서도 같은 활동을 펼쳐야하며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재단법인과 연구단체 및 협의체를 만들어 정부 및 기관의 지원 및 협조를 끌어내야 합니다.


                                       <사진. 이 지도는 다음 카페 '곧은터 사람들'에서 갈무리하였습니다.>

위 지도는 동이의 나라들의 영역이 표시된 지도입니다.
표시된 영역을 영토의 개념으로 이해하려 했다가는 입증하기도 어렵거니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난관에부딪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토가 아니고 영역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대륙백제의 경우를 보지요.
백제는 22담로를 두어 해외에 오늘날로 말하자면 총영사관과 같은 주둔 기지를 운영하였습니다.

(담로에 대한 정설은 아직 확립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학자는 담로가 도호부의 도독과 같은 위치로 주둔지역의 행정 및 군사 경제 등을 자치국가 수준으로 운영하였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는 '기성도제사학'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담로가 나가 있는 곳은 백제의 영토라기 보다 영역이라 함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륙백제와 내백제 그리고 위진남북조와 수나라 당나라 등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지의 왜倭나 당나라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활동영역으로 공유했다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대륙백제'이고 '아신백제'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담로가 있는 주둔지에 소규모의 군대도 있었을 것이고 간혹은 현지의 국가나 지방정권과 분쟁이 발생하면 전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의 옛 사서에 지나대륙의 곳곳에 대륙백제에 대한 기록과 때로는 전투에 관한 기록 까지 등장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대륙백제를 말하는 분들이 강고한 영토라는 주장이 강하다 보니 '기성도제사학' 뿐 아니라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으로 부터도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현대에도 이런 공유 형태로 살아가는 민족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유목민족 들 가운데 멀리 터어키 까지 이주한 종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는 영역

    이 중요했지 고국이나 국가라는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겨레는 국가와 다릅니다. 집단의식 이를 겨레 의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국가가 아닌 집단(겨레. 같은 종족이 아니어도 함께 생활하면 같은 집단으로 인정)이면 족한 삶을 현대에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링크를 보시기 바랍니다.

0. [🔺펌] 🍀다음 블로그 - [스크랩] 외국 학자들이 알려주는 한민족 역사의 진실!
      http://blog.daum.net/solomonlim/1290

🔼펌글 [*본 글은 오소운 목사가 작성한 글을 스크랩하여 일부 재구성함. 선비]

   위 링크에는 아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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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자들이 보는 동이족(東夷族) 글 : 오소운 목사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史記) (五帝本紀).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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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학자 노간(勞幹)은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들은 동방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 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만일 이(夷)가 먼저 문화를 이루어 앞서 나갔다면, 이 사람들이 먼저 사용한 사람 인(人)자는 전 인류적인 이름에 들 것이다.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려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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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마천의 책 사기를 가지고 있으나 아직 위 내용이 어느 면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위 내용이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또,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의 경우 책이 있다고 해도 지나어를 기준으로 한 한문책이라면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소운 목사의 위 글을 재구성한 '선비'라는 네티즌도 국가에서 나서서 고서적을 수집하고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 사실을 구명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 대만학자 서량지 교수가 한글학자 고 한갑수 선생에게 했다는 말이나,
📍 장개석 총통이 이시형 대한민국임시정부 부통령에게 했다는 말,
📍 임어당이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에게 했다는 말 등은 나도 인터넷에서 수 차 본적이 있는데 이런     내용들에 대한 사실구명은 국가가 나서는 것이 가장 적격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성도제사학"의 입김도 있고,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사업이어서 정부가 나서기 난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대한국사학=주인재야사학'이 나설 일입니다.
그것도 유명한 학자들은 시간이 없다든다가 다른 여러 이유로 나서지 못할 수 있으니 '일반재야대한사학' 연구자들이 길을 열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중물, 마중물이 있어야 물이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는 나서서 물꼬를 터야 합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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