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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호의 추억. 동그란수평선.. 요놈먹어라와 목포공생원...

koreanuri@hanmail.net 2013. 6. 5. 14:51

가야호의 추억. 동그란수평선.. 요놈먹어라와 목포공생원...

 

  여름이다.
올 여름은 평년보다 한 달 정도 길 것이라는 예보가 있는 데다 전력난까지 겹쳤다니 각오를 더 단단히 하고 여
름을 나야 하겠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 하고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 하지만 여름은 역시 바다가 아닌가 한다. 올 여름은 어떻게 바다를 즐길까?

 


1970년 목포에서 가야호를 타고 제주를 갔다.
제주를 가는 배의 갑판에서 아직 갓 벗어난 십대로서 처음 넓고 큰 바다를 보면서 놀랍고 황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1963년에 취항한 가야호라는 여객선이 목포와 제주를 운항하였다. 아래에 대한 뉴스에서 갈무리한 사진과 동영상을 링크한다.

 * 가야호 취항(목포~제주도)
    - 대한뉴스 제 431호 가야호 취항(목포~제주도) 제작연도1963-08-25  상영시간00분 39초  
    <= 윗 글을 클릭하면 대한뉴스 가야호 취항을 볼 수 있습니다.   http://me2.do/5z4PoOQX
 * 가야, 청룡호 진수
    - 대한뉴스 제 398호  제작연도1963-01-06  상영시간00분 55초   http://me2.do/GlpHR6tN

 

 

 

  수평선. 수평선은 직선이다.. 아니 동그라미다...
40년이 넘었으니 몇십년전이라고 붙여야하겠지.. 1970년 고등학생이 된 나는 친구들과 가야호를 타고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남해를 건너 제주를 가던 배(가야호)위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동그라미 였다.

  수평선 하면 얼른 일직선으로 하늘과 맞닿은 하늘이 떠오르지만 망망대해에서  항해하는 배위에서 본 수평선은 거대한 동그라미였던 것이다.


 고1, 아직 부모품을 벗어나기는 이른 나이인가?
친구 4명과 제주도 여행을 출발하였는데 목포 부두에서 한 친구가 아버지에게 붙들려 갔다. 제주도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말 듣지 않고 갔다고 길목을 지키신 것이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전설이 있는 분이다. 6.25때 장교로 압록강까지 갔고, 교과서에 실린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들고 환호성을 울리는 사진의 인물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당시 그 말이 정확한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어린 우리에겐 무서운 분이었다.


그리하여 3명이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 당도하여 표를 끊으려 하였다.
그런데 표가 없었다. 만선이 되었고 내일 표는 내일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탈한 세 친구는 확성기에서 목포의 눈물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출항하는 제주가는 가야호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선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배를 못탄 사람들과 출항한 배위의 사람들이 서로 웃지못할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처음엔 서로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짖굳은 "요놈 먹어라"를 시작하였다. 손으로 하다가 발로 하다가 나중엔 머리까지 동원하여 육지에선 배를 향해 배에선 육지를 향해 "요놈 먹어라"를 하였다.
( * 요놈 먹어라 - 오른쪽 주먹을 왼쪽 손아귀로 가져가 힘껏 밖으로 밀어내며 "요놈 먹어라!"하는 것인데 적당한 말인지 모르겠다. 또래의 아이들이 장난질로 하는 것인데 발과 머리까지 동원하였으니 진풍경임이 분명하다. )


어쩔 것인가?
하룻밤 자야 한다. 돈은 아껴야 하고, 세 친구가 터벅터벅 여객선 터미널을 나서는데 호객하는 사람이 있었다. 식당에 방이 있는데 국밥을 한 끼니만 먹으면 재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얼씨구나 따라 나섰는데 그 방이라는 데가 도저히 잠을 잘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세 친구는 그러지 말고 바닷가로 나가 텐트를 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마침 라디오에서 목포 유달해수욕장 광고가 나오던 때여서 찾아 나섰다. 단순한 생각에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해수욕장이 나오겠지..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어렵사리 목포유달해수욕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런, 모래사장은 없고 요즘말로 바닷가에 풀장을 막아 해수욕장이라고 운영하고 잇었다. 텐트치고 하룻밤 보내려던 계획이 깨어졌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세 친구는 역시 바닷가이니 어딘가에 모래사장이 있지 않겠는가? 베낭을 메고 힘들여 변두리 바닷가를 걸었으나 모래사장은 없고, 힘은 들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목포 공생원
이 때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다보니 목포공생원이란 간판이 보인다. 공생원? 퍼득 갱생원이 떠오른다. 휴지를 줍는 넉마주이라 알고 있는 커다란 대로 만든 바구니를 등 뒤에 메고 다니며 폐휴지를 줍는 갱생원. 그런데 그 공생원의 마당에 아이들이 보인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마당에 들었더니 아이들이 원장방으로 안내한다.

  허~ 목포공생원, 아마 지금(2013.06.05 수요일)도 있을 것이다. 왜倭의 JAL기 회사에서 자선사업으로 운영하는 고아원이라고 한다. 염려말고 아이들과 자고 가라고 한다. 베낭을 풀고 아이들이 안내하는 방에 들었다.
  이 때 부터 잊지 못할 그리고 겪기 어려운 하룻밤이 시작 되었다. 고아들이 친절하게 밥을 타다가 주고, 잠자리를 마련하여 주고, 그들의 신세를 이야기 나누며, 선물을 주고 받고, 제주도 가는 가야호의 배표도 돈을 주었더니 사다 주어 다음날 새벽에 장사진의 말미에서 고생하는 것을 면하게 하여 주었다.

  고아원 아이들에 대한 평소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날 밤 겪은 이야기는 후일로 미루어야 하겠다. 단, 내가 거기 여자아이에게 받은 합죽선은 왜倭에서 제작한 것이라는데 다음날 가야호를 타고 남해바다를 건너 제주도를 가다가 갑판에서 바다에 떨어뜨려 잃어 버린 것이 정말 천추의 한과 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야호의 갑판실.
당시 제주도까지의 배삯. 3등칸이 565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갑판은 465원 이었다. 그러니 우리 세 친구는 갑판표를 샀다. 그래도 3등칸이 여유가 있어 들려면 들 수 있었으나 날씨가 좋은 여름날씨에 무더운 객실에 들 이유는 없었다. 갑판이 더 시원하고 툭 터진 바다를 볼 수 있는데다 옹기종기 모여서 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좋았다.

 

 

  수평선. 수평선은 직선이다.. 아니 동그라미다...
그런데 그 때까지 변변히 바다를 구경하지 못한 내게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이 동그랗지 않은가? 해변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일직선이다. 그러나  배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완전한 동그라미다. 고개를 돌려 한바튀 완전하게 돌아 볼 수 있는 동그라미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글이 너무 장황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하겠다. 이후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 시작 못했지만 후일이 있지 않은가?

 

  

 


  올 여름은 어느 바다를 갈까?
매년 섬 하나씩을 찾아 다니던 여행이 중단된지 몇 년 되었는데 다시 시작할까?
여름은 역시 바다이고, 바다하면 역시 섬이고, 섬하면 역시 배를 타고 하는 여행이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배젓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라는데, 그렇다. 긴장된
마음으로 올 여름을 생각한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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