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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

koreanuri@hanmail.net 2013. 4. 20. 23:15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

광주 5월이 저만치 보입니다.
왜 아직도 광주 5월은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까요?
난 어제(2013.04.20 금) 민들레 소극장엘 갔습니다.
거기에 오월광대 박효선을 그리는 사람들이 아직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과연 있었습니다.
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효선이의 아들이 그리고 딸이 그리고 어머니가 지금 어떻게 지내신다는 말을 들으면서 왜 우리 역사가 아직도
이렇게 산 사람들,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단히, 아무 트집거리 없이, 그냥 순수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슴을 조이고, 눈치를 보고,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다시 광주 5월이 옵니다.
무슨 민주화운동이니 하는 것은 미사여구로 들리고 죄없는 민초들이 아직도 광주 5월을 폄훼하면서 그것이 스스로를 폄훼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채 광주 5월 때문에 가슴아픈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할퀴고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그냥 광주사태면 족합니다. 민주화운동이라든가 민주화의 성지라던가 이런 말은 아직도 설고 익숙하지 않습니다. 광주사태는 광주사태일 뿐입니다.


난 광주 5월에 묻어둔 실타래의 끝을 잡고 당겨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을 마음이 막습니다.
아직도 실타래를 당겨서 마음대로 풀어 내어 넓게 펼치지 말라는, 펼쳐서는 안된다는 가슴속의 주저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타래가 행여 보일세라 다시 감춥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정도로 겨우 그 실타래의 끝을 조금 잡아당깁니다.

< 정다웠던 친구. 오월광대 박효선 >

박효선
오월광대, 그를 찾아 민들레소극장을 갔지만 먹먹한 가슴은 오히려 멍울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멍울을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결국은 이 멍울을 풀지 못하는 것인지...

아래 글은 1994년 5월 19일 썼습니다.
삼엄하던, 아니 혼자 삼엄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쓴 글인데, 아직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계속 춤을 추고 있습니다. 하기야 글 가운데 말한 것처럼 그들은 영원히 춤을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도 춤을 춘다는 말이 이상한 말입니다. 그들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춤을 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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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처] 덩실덩실 춤을추는 사람들!!|작성자 il11

1994년 05월 19일

당시 이 글을 올릴때는 조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김없이 광주사태가 일어난 날 05월 18일이 돌아 왔는데 아직도 이 아픈 역사의 질곡을
헤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짊어진 멍애가 아직
도 풀리지 않고 있다는 생각 입니다.
이 글은 저의 글로 원문은 파란블로그(밝누리의 인생 노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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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는 환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저 바다건너 멀리 람보 나라의 항공 모함이 남해 바다에 도착 했다는
발표를 듣는 순간 동방의 해 돋는 나라 빛고을 사람들은,

"이제 살았다. 저, 정의의 사도 람보 나라의 항공 모함이 왔으니
우리 빛고을 사람들을 무참하게, 총으로 죽이고, 칼로 죽이고, 몽둥
이로 죽이는 저 무자비한 살인자 들을 혼내 주겠지."

그들은 얼싸안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람보 나라는 모르는척 해 버렸습니다.
동방의 해 돋는 나라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적을 막아라고 사주고 만들
어준 준 총과 칼로 동족의 가슴을 겨누고 들어와서 가차없이 빛고을 사람
들을 죽이는 것을 그 람보 나라는 모르는척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몇년후 그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고 빛고을 주민을 잔혹
하게 죽인자는 절로 추방 당하였습니다.
발포 명령은 없었다고 강변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몽둥이로 패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총으로 쏴 죽일때,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그자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절로 들어 갔습니다.

람보나라는 지금 까지도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더 이상 진상을 밝힐게 없다고 합니다.

빛고을 사람들은 오늘도 덩싱 덩실 춤을 춥니다.
불쌍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해서 덩실 덜실 춤을 춥니다.
쿠데타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살인자적인 일을 한 그자들을 위해서 더욱
신명 나게 춤을 춥니다.
그 살인자적인 자들은 언젠가는 진상이 밝혀 지는 날이 오면 할수없이
덩실 덩실 춤을 출것 입니다.
자기들이 총으로, 칼로, 몽둥이로 죽인 그 사람들을 위해 아비 규환의
지옥에서 끝없이 끝없이 춤을 출 것입니다.
아무리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고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록 덩실 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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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저는 필명을 '一丁'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한(溫), 모든(蘊, 全) 입니다

( ※ 이 글의 링크는 파란닷컴이 써비스를 중단하면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il11은 1991년 부터 쓴 나의 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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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소극장에서 친구의 얼굴이 든 책을 한 권 받았습니다 >


1994년 05월 19일
당시 이 글을 쓸때 퍽 조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올(2013년) 5월에는 묻어둔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더 꺼내 볼 수 있을까?
그것을 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광주 5월이 먼발치 보이는 지금 이 글을 여기에 쓰고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아직도 내 마음에서는 진행형 입니다. 광주 5월에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가슴속의 주저를 아주 없

게하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는 마음이 왜 이렇게 조심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