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필화(革筆畵). 장터에서 글자에 꽃과 새를 그리던 가죽그림..
혁필화(革筆畵). 장터에서 글자에 꽃과 새를 그리던 가죽그림.. |
그 모습 본 것이 벌써 오래이다.
장터나 사람이 모이는 곳의 길바닥에 앉아 무지개색의 글자를 쓰고 새와 꽃을 그리던 사람들 말이다.
난 혁필화가 없어졌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없어져서는 아까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는 혁필화가 아직도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혁필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배우는 사람이 있고, 생활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 민화 효제문자도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여덟 글자에 식물·동물 등 갖가지 사물 이용해 그림으로 형상화하여 글 모르는 아이·여자에 유교적 윤리 가르치는 수단이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난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순식간에 무지개 빛깔로 아름답게 그려지는 그림앞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납작한 가죽에 여러 색갈의 물감을 묻혀 휙휙 종이에 대고 휘두르면 꽃이 피어나고 새가 나르고 어느틈에 글자가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참 재주도 좋다고 감탄하였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렇게 길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난 한달음에 달려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장匠, 전통장인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옹기장, 대목장, 단청장(丹靑匠), 참빗장, 이름도 모르는 온갖 장인들이 어려움 속에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난 1980년대 초에 창무극의 선구자인 공옥진 여사가 베스타에 소도구를 싣고 시골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인 창무극으로 곱사춤 병신춤을 개척하여 퍽 어렵게 예인의 의지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었다. 지금 공옥진의 창무극이 이어지고 있을까?
대부분의 장인들은 생업을 보장하여 주지 못하는 자기의 기술이 맥이 끊기는 것을 두려워 한다. 선비들이 돈을 몰라 청빈하다고 하였지만 예인, 장인, 쟁이들도 기술은 있으나 그것으로 돈을 만드는 기술은 없다.
끊기는 것들이 많다.
며칠전 신문기사에 왕실 화각장(華角匠 쇠뿔그림가구)이 이젠 아들이 아니면 전승할 사람이 없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이렇게 없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면서 마음이 아팟다. 아들은 무슨 죄인가? 그런데 울며 겨자먹기로 아들에게 가르친단다. 정부의 지원금은 전승보조비 160만원이 전부라니 너무하다. 국민소득 3만 불 4만 불을 꿈꾸며 복지국가를 논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이토록 소홀히 해도 될까?
* 왕실 애장품이던 '쇠뿔 그림'가구..."이젠 자식밖에 전승할 사람 없어요" <== 클릭 http://me2.do/Glp3fqBj
그런데 행여나 했는데 세계일보에서 혁필화를 연재한 것을 발견하였다.
4회에 걸쳐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이야기(1)"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였다. 또 네이버 검색에서 많은 혁필화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옛 혁필화를 모아놓은 블로그를 발견하였고 이어서 혁필화를 즐기는 사람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발견하였다. 아하~ 이렇게 혁필화가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가고 있구나.. 퍽 마음이 좋다.
영화 서편제에 혁필쟁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 송화의 아버지 유봉의 친구가 장터에서 혁필화를 그리다가 친구와 걸죽하게 술을 마시면서 네
아들을 내게 달라 혁필을 배우면 굶어 죽진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유봉은 소리쟁이인데 혁필쟁이
친구에게 아들을 내어 놓겠는가? 자기를 이어갈 소리꾼을 만들려고 한다. 소리쟁이거나 그림쟁이거나
예인들이, 쟁이들이, 자기의 기예가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영화 서편제에서도 알 수 있다.
* 영화 서편제(유튜브 1시간 54분) 무료로 보기 <== 클릭. http://youtu.be/Z-MOMTUcVEc
(짧은 광고는 건너 뛸 수 있으나 거의 두 시간분량이니 시간 있을 때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영화 서편제는 예인의 전승을 위한 노력을 그린 이야기다.
친딸이 아니지만 딸 송화에게 자기의 소리를 이어가게 하기 위하여 유봉은 행여 송화가 다른 마음을 먹을까 싶어 두 눈을 멀게 만든다. 역시 친아들이 아니지만 아들 동호가 소리의 재주가 없자 고수가 되도록 가르친다. 소리꾼 소리쟁이 소리장이인 유봉의 기예를 전하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예인들은 자기의 기예가 맥이 끊길까봐 노심초사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전승받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다 그 예인이 죽고나면 그 기예는 끊기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끊겨버린 기예를 다시 살리기 위해 눈물겹도록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기관이나 단체도 있으나 한 번 맥이 끊긴 기예를 되살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 인터넷 검색 '혁필화 문자도' <== 클릭 http://me2.do/GvU33mzh
- 찾아진 그림들을 클릭하면 세계일보의 혁필화 연재기사를 찾을 수 있다 -
* 네이버 블로그 '벽없는 미술관' 민화 문자도 <== 클릭 http://me2.do/GjD55bmy
- 개인이 블로그에 동서양의 많은 미술작품을 모아 놓았습니다. 전통 문자도도 많다 -
* 블로그 야은혁필 <== 클릭 http://me2.do/FkeFJCqg
- 혁필화가 야은. 가죽붓 그림글씨 혁필화 소개, 혁필교육, 체험, 행사, 작품 등 안내 -
1970년대 말 진도에서 무명의 서예가를 만났다.
아직 20대 후반이었던 내가 서예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었을까? 나는 그 무명의 서예가를 도회지로 모셨다. 이름은 없으나 내가 보기에 서예작품은 퍽 훌륭하였기에 그 서예가에게는 작품활동만 전념하라고 하고 내가 작품을 들고 나섰다. 작품으로 생활을 하려면 작품을 팔아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OO서도원"이란 간판을 걸게 되었는데 그 서도원의 집기일체도 오직 작품으로 돈을 만들어 채워야 했다.
그런데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 무명의 서예가는 아직도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나支那, 倭왜를 지나 동남아를 건너 북미주 남미주를 거쳐 유럽에서 까지 전시회를 열었다. 나라에서 조성한 조형물의 글을 그 서예가의 작품으로 조성하기도 하였다. 난 내가 그분을 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인은 예인정신이 있고 예인 근성이 있다. 모든 장인들은 장인으로서 고집과 오기와 긍지와 근성이 있다.
그 서예가는 충분히 성공할만한 근성이 있는 분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분이 자기의 고향 진도에서 머물렀다면 지금과 같은 활동을 펼치진 못하였으리라. 예인은 쟁이는 장인은 오직 작품에 전념하여야 한다. 내가 한 일은 그것이다. 일정기간 그분이 오직 작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 혁필화 모임에서 그려진 여러 작품. 야은혁필 블로그에서 갈무리.. >
혁필화는 끊기지 않겠다.
젊은이들이 혁필화 그리기에 참가하고 혁필화로 요즘 유행하는 게임의 주인공을 그려내기도 한다. 전통에 신사조를 입히는 것이 어디 지금 일어난 일인가? 요즘은 창조란 말에 가렸지만 개혁 혹은 혁신이란 말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썼는가? 혁필화가 하필 전통대로 문자도만을 그릴 이유는 없다. 위 야은혁필 동호인들이 그린 혁필화를 보라. 얼마나 자유로운가? 게임의 주인공이나 다른 사물을 혁필로 그려서 나쁠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匠, 장인. 장이, 쟁이 들이 소리쟁이거나 그림쟁이거나 목수쟁이거나 긍지를 가지고 우리문화의 맥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릿고개가 언제적 얘기인데 욕심이라고?
"목표는 높게, 계획은 세밀하게, 실천은 성실하게"
우리의 쟁이들은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왔다. 이젠 우리의 쟁이들이, 장인들이, 예인들이, 좀 더 편하고 떳떳하게 전통문화를 이어가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