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를 달려라. 여름 장맛비와 땡볕을 벗하며.. 광야를 달려라...
황야를 달려라. 여름 장맛비와 땡볕을 벗하며.. 광야를 달려라... |
장마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올 08.01에 비가 오면 46일의 장마이고 사상 제일 긴 장마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예보를 보니 08.02는 전국에 비가 오고, 08.03~05일도 중부지방에 비가 오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니 47일 48일하고 기록이 늘어나게 생겼다.
장맛비가 이렇게 길어지면 한 철 벌어 일년을 사는 사람들에겐 고단한 일이 된다. 특히 해수욕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기상청의 예보가 틀려 장맛비가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휴가는 맘대로 갈 수 없다. 보통 한두 달 전에 휴가가는 날짜와 기간이 정해진다.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해진 휴가기간을 맘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올해 7월말에 휴가를 잡은 사람들은 이미 장맛비 속에 휴가를 보냈을 것이다. 그나마 휴가를 8월초로 잡았거나 여건이 되어 8월초로 미룬 사람들은 비 예보에 가슴깨나 조이겠다.
여름휴가하면 누가 뭐래도 제일이 바닷가다.
다음이 계곡이다. 바닷가나 계곡은 여름이 아니라도 철따라 즐길 수 있지만 여름바다와 계곡은 피서와 휴가가 맞물리기에 대부분 사람들에게 특별한데 만약 이런 날씨가 연년히 되풀이 된다면 휴가 풍속이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 금호동이 부른 황야를 달려라가 실린 음반 >
가슴이 답답할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금호동이 부른 "황야를 달려라" 라는 노래이다. 나와 이 노래에는 얽힌 사연이 있다.
나는 지방도시의 변두리에서 국민학교 4학년때인 1964년에 시내로 이사를 하였다.
그 집엔 방이 세 개였는데 부모님은 그 방 가운데 하나를 세를 놓았다. 그 방에 여러 사람들이 세를 들어 살았다. 언제인가 어떤 고등학생이 들었는데 난 간혹 그 형의 방에 들어가 놀았다. 그 때 들은 노래가 금호동의 황야를 달려라 이다. 어려서 그 학생이 부르는 것을 들었을 뿐이지만 가사와 노래를 기억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통한데 가사의 황야를 힘차게 달리자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인 것 같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그 고등학생을 따라 많이도 돌아 다녔다.
여름이면 방학을 한다. 방학을 하면 한여름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면서도 더운 줄을 몰랐다. 비록 시내라지만 옆에 커다란 대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에 들어가면 냇물이 있어 멱을 감을 수도 있었고, 등물을 할 곳도 있었고, 아주 맛있는 물을 먹을 곳도 있었다. 고향이 시골인 학생이 우리 집에서 자취를 하였을텐데 왜 여름방학이면 시골 집을 안 갔는지 모르겠다. 또 숲이 있어 나뭇그늘에서 햇살을 피할 수도 있었고, 거기에 놓인 평상이나 바윗돌 위에 앉아 동요 부터 유행가 까지 온갖 노래를 부르면서 밝은 달아래 놀기도 하였다.
그 때 고등학생인 그 형이 자주 부른 노래가 이 황야를 달려라이다.
냇물에 들어가 멱을 감고 숲그늘에 들어 노래를 부르는 그 형이 멋있고 그러니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래서 어느사이에 배운 노래가 지금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부르면 시원해 지는 노래가 된 것이다. 지금 흐르는 노래는 내가 부르는 것과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 원래 노래를 부른 가수가 맞겠지만 내가 오래도록 불러온 노래에 정감이 더 가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그러나 금호동의 이 노래를 듣고 있어도 가슴이 후련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야를 달려라
금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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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없이 맑은 하늘 밑에 2. 넓다란 벌판 달려가면
시원한 들바람 산바람이 어깨를 가볍게 스치네
눈부신 태양이 비쳐도 바람이 힘차게 불어도
젊음이 가득한 가슴 피고 언덕길 넘어서 달리네
나무 그늘에서 하모니카 불면 종달새도 합창을 하네
싱그런 풀냄새 풍기는 넓다란 벌판 달려가는
젊음이 가득한 가슴 피고 힘차게 황야를 달리자
이 노래를 부르면 내게 다가오는 시詩가 있다. 이육사의 광야曠野이다.
노래가운데 황야라는 가사를 보면서 광야를 자연스럽데 떠올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 민족은 너른 벌판에서 말달리던 민족이 아니었던가? 비록 지금은 반도의 남쪽에 밀려와 있지만 우리 민족의 심연深淵에는 광야를 그리워함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비록 노래와 시를 빌려서지만 광야를 달리는 꿈을 꾸지 않겠는가?
혜란강에서 말달리는 선구자나 광야를 건너 목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나 우리 배달겨레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광야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맥이 연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부지런한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에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중략 ~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가슴이 울려오지 않는가?
우리민족이 말달리던 광야가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가? 이육사가 왜정倭政으로 부터 해방을 꿈꾸는 시詩
라고 배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난 황야를 달리고 광야를 휘달리고 다시 천고의 뒤에 목놓아 부르
는 내 심연을 채운 마음의 외침이 중요하다.
* 경향신문 금호동의 황야를 달려라 음반발매에 대한 기사 <== 클릭 http://me2.do/FFhFbXdn
<1964년 04월 04일 금호동의 황야를 달려라가 실린 경향신문의 신문기사>
우리나라를 한반도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배달반도 혹은 동북아반도라고 하면 좋겠다.
만주를 만주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배달벌 혹은 동북아벌이라고 하였으면 좋겠다.
남북한이 사용하는 깃발을 한반도기라고 하는 것 보다 윷을 문양으로 하여 배달기라고 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대륙민족이면서 아울러 해양민족임이니 동아지중해의 수역을 알류산 열도부터 황해에 이르도록 하면 좋겠다.
남북통일을 당연히 하여야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을 유럽연합 같은 배달연합 혹은 동북아연합으로 통일을 이루면 좋겠다.
대륙을 달리고 바다를 달려 가슴에 담긴 그리움을 달래자.
'황야를 달려라' 1964년에 금호동이 불렀으니 제법 오래된 노래이다.
1964년 04월 04일의 경향신문 기사를 찾았다. 인터넷이 참 좋다.
이렇게 오래된, 50년이나 된 신문기사도 거뜬히 찾아 낼 수 있다.
비록 동요나 가곡이 아닌 유행가지만 내 기억에 오래남아 지금도 부를 수 있으니 장맛비를 보면서 부른다.
내 가슴을 채운 광야에 대한 열망으로 넓다란 벌판, 황야를 힘차게 달리는 것, 장맛비나 더위가 감히 범접할 수 있겠는가?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