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속삭인 인생 노우트' 수석만년묵(壽石萬年默) '저 바위 만년토록 말이 없구나...'

 

 

  수석만년묵(壽石萬年默)
  "돌과 속삭인 인생 노우트"
  돌은 바윗돌이거나 조약돌이거나 말없이 세월을 지켜본다.
  돌과 함께 오연히 세월을 지켜 보는 것이 내 삶을 거품처럼 스러져 가게 하지 않는 방법이리라.

 

난 인터넷에 블로그나 홈피 등을 만들 때 "돌과 속삭인 인생 노우트"를 사용하여 왔다. 최근에는 그보다 ".밝  누  리.의 인생노트"를 쓰게 되었지만 전에는 "돌과 속삭인 인생 노우트"를 많이 사용하였고 지금도 블로그 홈피 및 거기에 운영하는 게시판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돌, 인류의 문명은 돌에서 시작 되었다. 그러고서 수십만년, 어떤 학자에 의하면 인간이 손을 사용하기 시작한후 돌을 연모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까지 50만년이 걸렸다고 하기도 한다. 그 많은 세월을 돌은 사람의 옆에서 사람을 지켜보며 함께 하여 왔다.

 

세월도 흐른다 하고 물도 흐른다 하는데 하필 세월은 지켜보지 못하고 오직 더불어 흘러야 한다. 그러다 사람은 거품처럼 스러져 가는데 세월은 마냥 흘러만 간다.  그 세월을 돌은 언제까지라도 지켜보고 있으돌과 이야기를 나누어 세월을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 글씨는 서예가의 작품이 아닙니다. 필자가 에디터로 작성하였습니다. >

 

 

이 문구를 안 것은 1979년 쯤이다. 어느 서예가가 내게 족자로 써 주었고 지금도 간혹 족자를 보면서 돌과의 대화를 생각한다. 그런데 난 이 말의 뜻을 지금도 잘 모른다.

 그래서 혼자 "저 바위 만년토록 말이 없구나"라고 풀이하였고 지금도 과연 이 말이 무슨 뜻일까를 간혹생각한다.
난 그래서 나의 홈피나 블로그 등에 다음 글을 만들어 사용하여 왔다.

 


"세월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물도 세월도 흐른다고 하는데 왜 세월은 오지 더불어 흐르다 도도히 흐르는 세월을 뒤로 한채 거품처럼 스러져
가야 할까요?


수석만년묵(壽石萬年默)
저 바위 만년토록 말이 없구나


새천년 아니 수천 수만 년 까지라도 끝없이 오연히 세월을 지켜 보리라 합니다."


내가 운영하는 홈피나 블로그 가운데는 위와 비슷한 글이 대문에 걸려있는 곳이 지금도 있다.

 

 

바위는 돌이다.
그 돌을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 따라 여러가지로 부른다. 걸림돌이 되었다 디딤돌이 되기도하고 조약돌이 되었다 바윗돌이 되기도 하고 하차잖은 돌맹이가 되었다가 주춧돌이 되기도 하고 차돌이 되었다가 부석이 되기도 하고 금강석金剛石이 되었다가 사석沙石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때에 맞춰 부르는 돌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천년 만년이 흐르도록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냥 말없이 지켜본다. 원시시대에는 구석기로 좀 지나서는 신석기로 또 조금후에는 금석병용기로 그리고 수없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곁에는 언제나 여러가지 돌이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 없다.


금강산金剛山 금골산金骨山
산이름만 봐도 우리나라엔 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나支那처럼 황토모레가 많은 땅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돌과 함께하여 왔다. 전방후원형의 묘제가 무엇인가? 앞에는 네모난 제단을 만들고 뒤에는 동그란 묘를 짓는다는 것인데 지금도 우린 묘앞에 네모난 상석을 놓고 뒤엔 동그게 묘를 짓지 않는가? 이렇게 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우리 곁을 지킨다.

( * 금골산은 진도 울돌목에 인근한 산의 이름 입니다.)


                         동요 돌다리


         ♪ ♬ ~ 돌맹이를 나르자 영치기 영차
                    어서어서 나르자 영치기 영차
                    무너진 돌다리 고쳐놓자 다를오너라
                    돌맹이를 갖다 놓아라 한 개 한 개 늘어 놓아라
                    어른 먼저 건너가고 나서 아이 나중 건너 가세요
~ ♬ ♪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가 6학년었던가?

음악책에 나왔던 노래인데 제목도 모르겠고 이 노래를 찾을 수도 없지만 나는 간혹 부른다.
걸림돌. 디딤돌. 조약돌. 바윗돌. 돌맹이. 주춧돌. 차돌. 부석浮石. 금강석金剛石. 사석沙石... 무엇인들 어떠랴?

 

 

우리 역사는 유난히 돌과 관계가 깊다.
고인돌부터 시작하여 적석총(돌무덤)을 거쳐 석성(石城)을 지나 성황당돌무지를 거쳐 돌다리를 지나 돌담에 이르기까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는 유난히 돌과 절친하다.
고려때 임연이 축조했다는 돌로 지어진 농다리는 1천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질기게 우리 곁을 지키는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 김준을 죽이고 실권을 잡은 임연林衍이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는 충북 진천의 농다리(鎭川 籠橋)  >

 

몇 달 전에 끝난 MBC 사극 무신武神에 임연林衍(~1270)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무신정권 최우의 손자 최의를 제거하고 집권한 김준金俊(~1268)을 제거하고 실권을 잡은 후 원종(고려 제24대왕 재위 1259∼1274)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하여였다가 몽골의 위협에 다시 원종을 복위 시키는 등 혼란속에 항몽전쟁을 지속하다 병사하였는데 충북 진천에 가면 농다리(籠橋)라는 임연이 만들었다는 다리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다.


나는 위의 무신武神에 나유羅裕 대장군大將軍이 등장하기를 바랐는데 연속극을 보지 않아 등장하였는지 모르겠다. 회원대장군懷遠大將軍 나유는 원종의 태자인 고려 최초의 충忠자돌림의 왕인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을 호종하여 몽골의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이 때 몽골의 세조 쿠빌라이는 고려 태자 충렬왕을 고구려 태자로 알고 맞는다. 몽골사람들은 고려를 고구려로 인정하였고 그랬기에 고려태자를 고구려 태자로 인정하고 맞은 것이다.


  그런데 임연이 왜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하였다가 다시 원종을 복위 시키는 등의 혼란을 저지를까?  그리고 임연이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임연의 미움을 받아 자신의 신분이 위태롭게 될 것을 알면서도 태자의 입국을 막은  나유 대장군은 어떤인물일까? 과연 화가난 임연은 나유대장군의 장인을 죽이고 강제로 이혼을 강요하였다. 우리역사에 묻혀있는 인물들.. 나유 대장군은 세계 최고最古이고 최고最高인 우리나라 선박 건조술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분으로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만든 조선장造船將 체암 나대용(羅大用) 장군이 그의 후손이다.
  몽골의 세조 쿠빌라이가 고려 태자를 고구려 태자로 알고 맞은 것과 임연 및 나유 대장군 그리고 충렬왕과 관련된 내용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 방향이 다른 내용이므로 나중에 다시 거론하려고 한다.

 

농다리의 모습을 보자. 

 

<농다리는 고려시대 임연이 축조하였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인근의 농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돌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람의 삶을 지켜보며 말이 없다.
돌담도 돌구유도 돌확도 주춧돌도 온돌구들도 성황당돌무지도 앞으로 아무리 문명과 문화가 달라진다

하더라고 돌은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볼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오연히 세월을 지켜 보리라한다.

 

수석만년묵(壽石萬年默)
흐르는 세월을 흐르는 물을 보듯 영원토록 말없이 지켜 보리라 한다.


"돌과 속삭인 인생 노우트"

말없는 바위와 이야기를 나누어 세월을 오연히 지켜야겠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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