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米壽 노모의 어록語錄.. 성탄연휴 동안 오토캠핑장에서... |
미수이신 어머니.
어머님이 오토캠핑장에서 간혹 한 마디씩 하시는 말씀을 모아 보았다.
한 세대 차이지만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어록語錄을 그냥 놓치지 않으려고 여기에 올린다.
올해 쉬는날이 많다건가?
그러나 연휴가 퍽 오랫만이다. 연유가 어떻든 05.17~19 연휴를 맞아 오토캠핑을 출발하였다. 성탄연휴, 성탄聖誕이란 성인이 태어나신 날이니 부처님 오신날도 마땅히 성탄절임이 분명하다. 동해안 백암온천 인근의 폐교된 초등학교를 오토캠핑장으로 운영하는 곳에 가는 동안 영양면 일월산이란 곳에서 야생화축제를 만났다. 그런데 거기에 시인 조지훈의 승무 시비가 서 있고 거기가 조지훈 시인의 고향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노모가 좋아하시는 먹거리를 먹은 것도 좋았만 불교와 무관한 나이지만 성탄절에 시인 조지훈의 승무僧舞 시비를 만난 것도 의미가 있는 일 아닌가 하였다.
오토캠핑장에 제 일착으로 도착하였다.
미수米壽이신 노모가 언제 또 이런 데 가시겠느냐고 모시고 나섰지만 지난달 노인당에서 밤 늦도록 고스톱을 치시고 나오시다 주저 앉으셔서 허리뼈가 주저 앉았는데 워낙 고령이라 마땅한 시술 방법이 없다고 하여 브레이스의수족 제작소를 추천받아 보호대를 제작하여 차고 계시는 처지라 캠핑장에 도착하자 부랴부랴 텐트를 치고 누울 자리를 마련하여 전기장판을 연결하여 드렸더니 깊은 잠에 드신다.
오후가 되어 캠핑장이 가득차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떠들석하다.
나 처럼 노모를 모시고 오는 캠핑가족은 없지만 가만히 보면 어린아이 안 딸린 텐트가 없다. 여섯살 배기 우리 아이도 유치원에서 만나는 친구 말고는 집 주변에 함께 놀 친구가 없는데 다른 아이들과 곧잘 사귀고 논다. 몇 살이라고 말하고, 대답하고 금방 언니 오빠 동생이 되고 함께 어울려 그네 뛰고 매미채로 벌레잡고 미끄럼 타면서 요란하다.
이 글은 여행기라기 보다 어머님의 말씀을 모아 보려고 시작한 글이니 여정은 생략하고 어머님 말씀을 모아 본다.
* 어머님의 첫 번째 말씀.. "구구각색."
* 어머님의 두 번째 말씀.. 천막에 언제 가?
* 어머님의 세 번째 말씀.. "냇물이 어디여?"
* 어머님의 네 번째 말씀.. "다 남자들이네.. 옛날 여자들이 불쌍했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 어머님의 다섯 번째 말씀.. "싸웠나 봐~"
* 어머님의 여섯 번째 말씀.. "왜 소리 질러. 귀가 안 들려 그러는데.."
* 어머님의 일곱 번째 말씀.. "너희들 먹는 것은 다 먹어. 자꾸 묻지 마~"
* 어머님의 여덟 번째 말씀.. "생각 안 나~"
* 어머님의 첫 번째 말씀.. "구구각색이네~"
한 잠 주무시고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텐트장을 한 바퀴 돌아 오시더니 "구구각색이네~" 하신다. 그렇다. 어머님의 주변을 살피는 눈이 예리하다. 난 생각지도 안했는데 텐트와 장비들이 모두들 같은 듯 다르다. 그러니 구구각색이란 말이 딱 들어 맞는다.
* 어머님의 두 번째 말씀.. 천막에 언제 가?
자고 일어나 우선 백암온천에 들었다가 평해읍에 있는 월송정에 갔다. 최규하 전대통령이 현판을 썼다는 월송정에 휠체어를 밀고 올라갈 길이 없었다. 그러니 혼자 휠체어에 앉아 계시라 하고 세 식구가 올랐다 내려오니 지루하셨던 모양이다.
"천막에 언제 가?"
아하~ 텐트를 천막이라고 하신다. 난 텐트란 말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머님이 천막이라고 하시는 말을 듣고 그렇구나 싶다. 왜 천막이나 채알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텐트라고 하게 되었을까?
* 어머님의 세 번째 말씀.. "냇물이 어디여?"
오후에 텐트로 돌아와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갑자기 냇물이 어디냐고 하신다. 왜요? 했더니 그릇을 씻어가지고 오가는 사람을 가르킨다. 수도시설이 되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음식을 씻고 설거지하러 오가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냇물이 있나 보다 하신 것이다.
* 어머님의 네 번째 말씀.. "다 남자들이네.. 옛날 여자들이 불쌍했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런데 그렇게 코펠에 설거지 거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들이다. 그 모습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다. 언제고 부엌일은 여자 몫인 시절이 그렇게 먼 옛 얘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라는 말씀에서 옛 우리의 어머니들이 어떻게 살아가셨던가를 알 수 있다.
* 어머님의 다섯 번째 말씀.. "싸웠나 봐~"
저녁을 지어먹고 텐트앞에 의자를 펼쳐놓고 앉았는데 어머님의 옆 텐트를 보고 그러신다. 보니 정말로 여자는 휴대폰을 붙잡고 남자를 거들떠 보지않고, 남자는 제법 거리를 두고 의자에 앉아 역시 여자를 거들 떠 보지 않는다. 나는 개인주의에 젖은 사람이 되었을까? 옆 텐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관심 밖이다. 이제 고기를 구워 술 한잔 할 생각 뿐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주변을 그렇게 살피시는 것, 그 것도 평생 살아오신 습관 아니겠는가?
* 어머님의 여섯 번째 말씀.. "왜 소리 질러. 귀가 안 들려 그러는데.."
무슨 일이고 어머님도 알으셔야 한다. 그런데 간혹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을 잘 못 알아 들으실 때가 있으시다. 그런 때면 자꾸 물으신다. 결국엔 알아들으시라고 크게 말씀 드리면 그게 소리 지르른 것으로 보이시는 모양이다. 보청기를 제일 좋은 것으로 마련하여 드렸는데 답답하다고 하나만 끼우신다. 그러니 반 만 알아들으시는 것이다.
* 어머님의 일곱 번째 말씀.. "너희들 먹는 것은 다 먹어. 자꾸 묻지 마~"
텐트에서 야참 먹을 시간이다. 먹을 것을 퍽 준비하여 갔으니 메뉴를 골라가며 먹어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께 뭘 드시고 싶으시냐고 물어 보니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막상 밤참을 드리니 입에 맞지 않는다고 두 번을 물리치시고서야 좀 드신다. 그러니 다 먹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뭐 먹고 싶다고 말씀하시면 좋은데...
* 어머님의 여덟 번째 말씀.. "생각 안 나~"
텐트치면서 잘 두었던 손전등이 없다. 나는 애랑 잠시 산책을 하고, 애 엄마는 잠 잘 준비하느라 어머님 자리 봐 드리는 사이에 손전등을 들고 계셨는데 어디에 두셨는지? 텐트 안에 두었다면 다행이지만 밖에 두면 잃어 버릴까봐 꼭 찾으려고 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어머님의 아홉 번째 말씀.. "잘만 하네~"
첫 날을 텐트 안에서 잘 주무셨다. 둘째 날 저녁, 일기예보에서 셋째 날 01시 부터 비가 내려서 15시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것 큰일 났다. 88세 어머님과 6살 아이가 비 내리는 텐트 안에서 견디겠는가? 급하게 숙소를 잡아 보려고 해도 백암호텔 일대에 연휴의 한가운데에 남는 방이 있을 턱이 없다. 급하게 캠핑장 사무실을 찾아 교실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하였더니 한동안 망서리다가 3대가 함께 오신데다 워낙 고령이시니 사용하라고 억지승락을 하였다. 텐트 등 장비 일체를 거두어 차에 싣고 교실에 조그만 텐트를 별도로 쳐서 어머님을 모셨다. 휠체어에 앉아 캠핑장의 석양을 바라보며 말이 없으시던 어머니를 교실의 텐트로 모셔더니 슥 돌아 보니고는..
"잘 만 하네~"
하신다. 물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교실이어서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나 새벽이 되고 아침이 되어 봄비치고는 굵은 빗방울이 내릴 때 이렇게 피난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2박 3일
휠체어에 노모를 모시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것이 잘 한 일일까? 그냥 호텔이나 펜션을 잡아 편히 모시는 게 옳지 않을까? 지난해에도 조치원의 야영장엘 한 번 모시고 갔지만 올해는 동해안으로 가니까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모시고 나섰는데 힘든 여정을 잘 견디신 어머님이 고맙다.
미수가 되신 어머니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우리와 다를까?
어머님이 오토캠핑장에서 어머님의 시야에서 간혹 한 마디씩 하시는 말씀을 모아 보았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말씀이지만 야영지에서어록語錄을 어머님이 보시는 관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한 날들의 기억을 잊지않고 간직하기 위해 여기에 올린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