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선정 2018.08 독립운동가 김교헌
고조선은 요임금때의 나라로 대한땅을 아우른 큰 나라다.
🌻18세기 프랑스 레지신부가 고조선은 요임금때 있던 나라로 대한땅을 아우른 큰 나라라고 하였는데..
🌻20세기 초 1910년대에 대한 학자가 쓴 세 권의 책과 내용이 일치하여 교차검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ㅡ 이하. 퍼왔습니다. ㅡ
2018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김교헌 선생 선정 2018.07.31


무원종사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은 민족사학의 권위자로서,《신단실기(神檀實記)》와《배달족역사(倍達族歷史)》,《신단민사(神檀民史)》를 저술해 대륙사관의 기틀을 다지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인물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무원(茂園)이다. 명문거족의 후예로 수원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7대조 김주신(金柱臣, 1661~1721)은 숙종의 장인이며, 아버지는 공조판서 창희(昌熙), 어머니는 풍양 조씨로 판관을 지낸 희필(熙弼)의 딸이다. 자택은 영조 때 왕자궁으로 쓰이던 340칸 대저택을 하사 받은 것인데, 김교헌이 집안의 종손으로서 독립운동을 위해 전 가산을 팔은 뒤 보성학교와 명성여자실업학원(현 동국대 사대부고)을 거쳐 조계사에서 인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그의 나이 18세 되던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한림옥당·병조참의·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는 순탄한 관직 생활을 했다. 그가 다양한 서적을 섭렵하고 지식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시기는 1903년 문헌비고 찬집위원 활동에서다. 김교헌이 5년에 걸쳐 완성한《증보문헌비고》(1908)는 상고부터 대한제국 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각종 제도와 문물을 정리한 책이다. 1909년에는 규장각부제학으로서 국조보감 감인위원을 겸직하였는데,《국조보감》은 조선시대 역대 왕의 업적 가운데 선정(善政)만을 모아 후세의 왕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편찬한 편년체 역사책이다.


김교헌이 항일의식을 고취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06년 동래감리 겸 부산항재판소 판사와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된 일제의 경제침략에 맞서서 이권 운동을 징계하여 다스리다가 일본인들의 횡포와 친일파 송병준의 모함으로 해직되었던 것이다. 사건 뒤 비밀결사 신민회 회원과 교우 관계를 맺었으며, 조선광문회에 입회하여 현채·박은식·장지연 등과 함께 고전간행사업에 중추 역할을 하였다.


1909년 음력 1월 15일 대종교의 중광(重光, 부활)은 구한말 고양되던 단군사상을 한민족 구심점으로 통합하는 강력한 종교운동의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김교헌 역시 입교하여 유근과 함께‘단군의 사적을 살핀다’는 뜻의 단군 기록 모음집-《단조사고(檀祖事攷)》(1911) 편찬을 주도하였다. 그는 종단에서 총본사 부전무·경리부장·도사교 위리·남도본사 전리·총본사 전강을 지내다가 1916년 9월 홍암 나철의 뒤를 이어서 제2대 도사교(교주)에 취임하였다. 1917년 일제의 박해를 피하여 대종교 총본사를 북간도 화룡현으로 옮기고 교세확장을 통한 독립운동의 강화를 꾀하는 한편, 동포들의 민족정신 교육에 전념하였다. 1918년 11월 무장항일투쟁 선언서인〈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핵심 역할을 하였다, 같은 해 12월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서일(徐一)을 총재에 담당하게 하는 등 적극적인 무력투쟁을 전개하게 한 끝에 1920년 9월 청산리에서 대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그 뒤 일본군의 보복을 피하여 총본사를 영안현으로 옮겨 계속해서 구국항쟁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만주 지역에 걸친 일제의 토벌작전으로 독립운동 및 교단 기반이 크게 붕괴되자 병을 얻어 타계하고 말았다.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묘소는 중국 화룡시 청호촌 언덕에 초라한 형태로 남아 있다.(글 출처 byunsdd 블로그)

http://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284342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교헌(金敎獻, 1867. 7. 5.~1923. 11. 18.) 선생을 2018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자 대종교에 입교했다. 1914년 '신단실기(神壇實記)'와 '신단민사(神壇民史)'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서사로서 망국이후 한국 국민들의 애국혼을 고취하였다.

 

ㅡ 이상. 펌 ㅡㅡㅡㅡㅡㅡㅡ

아주 더운 8월 첫 날입니다.
8월은 전승광복절戰勝光復節이 있는 날인데 특히 올해는 남북교류의 물꼬가 터져 겨레의 광영을 내다볼 수 있어 다른해 보다 의미심장합니다.

뭐 북이 전승광복절을 함께하지 않는다고 했다던가?
그렇더라도 얼음짱 같던 남북이 함께하게 되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호혜의 길을 찾고 있으니 잘 풀리겠지요.

ㅡㅡㅡ
프랑스 레지 신부가 쓴..
고조선이 요임금때 있던 나라라는 보고서를 유럽 예수회에 보고한 보고서가..
책으로 출판 되었다고 합니다.
🌻 네이버 책 -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779542

그런데 그 책(『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을 쓴 '유정희'가 내일신문과 인터뷰하며 말하기를..
"20세기 초 국내의 ‘국학역사학자’들의 저술들인 <신단민사(神檀民史)>, <신단실기(神檀實記)>, <단조사고(檀祖事攷)> 등과 교차검증 된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위 책들..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2018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김교헌 선생이 바로 위 책들의 저자 혹은 편찬자로군요.

<신단민사(神檀民史)>, <신단실기(神檀實記)>, <단조사고(檀祖事攷)>
18세기 청나라에 와 있던 프랑스 레지 신부가 유럽 예수회에 보고한 보고서에서 서술한 고조선역사가 위 책들과 교차 검증하여 보니 결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와 18세기 글의 내용이 일치한다.
대한사람이 쓴 내용과 프랑스 신부가 쓴 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한다.

ㅡ 고조선은 요임금때 있었다.
ㅡ 고조선은 대한땅을 아우른 큰 나라였다.

위 내용이.. 일차한다는 것인데..
20세기에 저술한 <신단실기(神檀實記)> 등의 책과 18세기에 레지 신부가 유럽 예수회에 보고한 <고조선사 보고서>의 내용이 교차 검증이 된다는 것인데.. 레지신부는 고조선을 요임금때의 나라이며 대한땅을 아우른 큰나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ㅡ 신단실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739
ㅡ 단조사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3659
ㅡ 신단민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신단민사&ridx=0&tot=1

2018년 08월의 독립운동가 김교헌 선생
겨레가 남북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교류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김교헌 애국지사가 '2018년 0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된 것에 한층 깊은 의미를 둡니다.


2018년 전승광복절..❗
대한민국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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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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