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광해군의 생모 공빈김씨..

  왜 우리나라 지도를 북을 향해서만 보는가?

 

우리민족은 배달대륙(*)을 달리던 대륙민족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동아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양민족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륙을 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륙민족이면서 아울러 해양민족인 우리의 본질을 잊고 한반도에 안겨 안존하고 있습니다.
눈을 돌려 대륙과 바다를 보고 대륙민족이면서 아우러 해양민족인 우리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
다.

* 배달대륙( 동북아대륙)이란?
   지나(China)북부. 바이칼호 일대. 몽고초원. 시베리아 일대. 배달벌(동북아평원. 만주). 배달반도(동북아반도. 한반도). 해참위 흑룡강 일대(블라디보스톡 및 아무르강 등) 동북아 열도(왜倭 열도) 등을 아우른 환국과 배달국 및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등의 우리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대륙.
** 동아지중해
     좁게는 발해와 황해를 넓게는 황해 남해 동해를 더 넓게는류큐열도 일대까지를 아우르는 바다를  유럽의 지중해와 같이 보는 동국대 교수 윤명철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역사학계의 이론

 

                         < 남쪽을 향한 우리나라 지도. 넓은 바다가 보입니다. >

우리나라는 따로 명당이 필요하지 않은 땅입니다.
좌청룡 우백호 내명산 외명수 방풍 득수
우리나라 자체가 위의 모든 요건을 갖추었습니다.

먼저 지나(China)가 우리나라의 좌측을 감싸 안았으니 좌청룡.
다음 왜 열도가 우리나라 우측을 감싸 안았으니 우백호.
배달반도(혹은 동북아반도. 한반도 보다는...)가 죽 벋었으니 내명산.
제주도 넘어 태평양이 외명수.
삼천개를 헤아리는 섬이 바람을 막아주니 방풍.
금수강산 어디나 맑은 물이 흐르고, 삼면이 바다에 임했으니 득수.

우리나라는 이와 같이 좌청룡 우백호 내명산 외명수와 방풍 득수를 갖춘 명당인 것입니다.

누구나 성묘를 가면 묘를 향해 절을 한 후 돌아서서 앞을 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도를 보면서 북쪽만을 보는 것은 묘지에 가서 묘지만 보고 묘지 앞의 경치나 지형을 보지 않는 것이나 같습니다.


명당,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 부터 명당에 조상을 모시려고 애썼습니다.

아래 글을 보면 광해군이 그의 생모인 공빈김씨의 묘를 풍양조씨 시조 조맹과 같은 용맥에 안장하였으면서도 단 10m의 차이로 쿠데타로 실각한 반면  풍양조씨 일문은 조선후기에 권문세가로서 세도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 광해군 생모 공빈김씨와 풍양조씨의 명당을 둘러싼 희비 >

동일한 용맥선상에 자리하였으나

광해군은 실각하고 풍양조씨 가문은 발흥해…
조맹 선생 묘지와 대학자 포저 조익

풍수지리는 당대인의 삶은 물론, 그 후손에게도 영향을 끼침으로써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높여왔다. 조선후기 광해군과 포저 조익 선생 사이에 벌어졌던 묘지 쟁탈전과 그 결과로 인해 갈린 후손들의 운명은 특히, 분묘의 형세와 조상 유해의 매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십여 미터 차이로 갈린 후손의 운명
공빈 김씨의 분묘는 성묘(成墓)라고 일컬어지는데, 흥미로운 것은 명지로 인정받는 조맹 선생의 분묘와 동일한 용맥선상(龍脈線上 : 풍수지리에서 용맥은 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라 하므로 용맥선상이라 함은 같은 정기가 흐르는 선이라 할 수 있다)에 생모를 안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기어이 실각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공빈 김씨를 안장하고 ‘릉’으로 승격시킨 뒤 광해군은 선조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올랐으며, 비운의 주인공처럼 시해를 당하지 않고 천수도 누렸다. 하지만, 동일한 용맥선상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실각했고 조맹 선생의 후손들은 번성하여 권문세도가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형기론(形氣論 : 산세의 외형과 그 속에 내재된 생기의 관계를 판단하는 풍수지리 이론)의 전범으로 추앙 받는 금낭경(錦囊經 : 조선시대 내내 그 전문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치러야 했던 대표적인 음양과 과시과목)이 꼽는 7대 불가장지(不可葬地 : 장지로 써서는 안 되는 곳)를 예로 들면 이러한 배경이 설명된다. 
 
< LX대한지적공사 땅과 사람들 2013년 02월호 28~29쪽에서 인용>

과연 10여m 차이로 이런 발복의 차이가 있을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명당을 소중히 하는 우리의 정서를 잘 나타낸 글입니다.

 

  멕시코에는 아즈텍 문명이 있습니다.

지난번 나는 이 아즈텍 문명이 우리 배달겨레가 기원전 10세기 부터 기원후 10세기 가지 이주하여 이룩한 문명이라는 주장을 배재대학교 손성태 교수의 특강을 여기에 올린바 있습니다.  그 강의 내용에 아즈텍 신전이 우리 배달겨레의 적석총(피라밋)과 같은 서향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멕시코 아즈텍의 테오티와칸Teotihuacan (아즈텍 문명)의 달의 신전(달의 피라미드).          서향이어서 배달벌의 태백(적석총. 피라밋)과 같이 밝음과 태양을 경배한 신전

  만주에는 피라밋이 많다고 합니다.
피라밋은 석곽묘를 말하는데 우리민족은 이렇게 석곽묘를 조성하고 그 묘지를 태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집트의 피라밋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태백이 되는 것입니다. 위에 설명한 멕시코에도 태백이라 불리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손성태 교수의 강의에 의하면 그 태백들이 배달벌(만주) 일대에 거의 1만기 정도 있는데 대부분 서향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밝음을 경배하고 조상을 경배하기 위해 서향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민족이 이동하여 세운 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신전도 우리 배달겨레가 세운 것이어서 서향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민족이 조상의 묘를 향하여 갈 때 동쪽을 향하여 가면서 밝음에 대한 경배를 하고 뒤로 돌아 중원대륙을 넘보았듯이 지금 우리는 북을 향해 가면서 또한 남을 넘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추모공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물안에 가로 세로 50Cm 정도의 공간에 화장한 유골을 모셨으니 명당운운하는 것이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니 위 광해군과 풍양조씨처럼 용맥에서 10m 차이로 자손들의 운명이 갈린다는 데 이르면 과연 우리의 장례 문화가 옳게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위에 내가 말한대로 우리나라의 지형을 남쪽, 넓은 바다를 향해 보면 우리나라 자체가 명당이니 어느 땅 어느 곳에 묘지가 있더라도 명당이 아닌 곳이 없지 않겠습니까?
지도를 펼치면 북쪽 대륙과 함께 남쪽 바다를 살펴야 명당지지인 우리 배달대륙의 기운이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배달대륙을 달리던 대륙민족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동아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양민족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륙을 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륙민족이면서 아울러 해양민족인 우리의 본질을 잊고 한반도에 안겨 안존하고 있습니다.
눈을 돌려 대륙과 바다를 보고 대륙민족이면서 아우러 해양민족인 우리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
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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