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과(赦小過) 작은 잘못은 용서하라. 논어 자로(子路)편..

 실수 없다면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

 

 

 

 

 “사소과(赦小過) 작은 잘못은 용서하라”
 “작은 잘못을 용서해 준다면 형벌이 남용되지 않고 구성원이 기뻐할 것이다(小者赦之 則刑不濫而 人心悅矣)”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아래로 온전한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不赦小過 則下無全人矣)”

 

사서삼경四書三經
사서四書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삼경三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 용서와 용납. 용서보다 용납이 수평관계에서 서로 배려하는 것으로 느껴 지는데.. >


배우는 것도 때가 있다. 배울 때 배우지 못하면 다시 배울 기회를 얻기 어렵다.
난 사서삼경을 배우지 못했다. 우선 한자를 많이 알지 못하며 한문은 더욱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논어나 중용 등 사서삼경에 실린말이 나오면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이겠지만 난 이 글의 '사赦'를 꼭 용서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보다 용납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옥편의 색인은 '용서할 사赦'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용서란 말이 너무 군림하는 말로 느껴진다. 그보다 용납容納이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각설하고.. 종교를 신을 믿는 행위로 생각하지 말고 풍속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유교儒敎만 하더라도 그렇다. 유교는 종교나 사상이기 이전에 풍속이다. 동양사회가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경전이라하면 유교의 사서삼경뿐 아니라 불경 성경 코란 등의 종교의 경전도 포함될 것이다. 때로 논어나 중용 등 유교의 경전에서 좋을 말을 발견하고 성경이나 불경에서도 좋은 말을 발견한다.    유교의 경전인 사서삼경은 우리의 풍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데 그 뿌리인 사서삼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을 떠나 살아가는데 불편을 초래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배우고 때로 익히며 살아갈 수밖에...

 

 

난 얼마전 여기에 "채용(2013.02.01)"이라는 글을 통해 내가 사람을 쓰는 원칙을 이야기한 바 있다.

내용 가운데 "세상에 못쓸 사람은 없다"란 말과 함께 "똑똑한 직원은 유유상종하게 하라"라는 올렸다.

아래에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본다.


똑똑한 직원은 유유상종하게 하라.
이 것도 내가 체득하여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A라는 사람이 유난히 능력이 뛰어나서 일을 잘하니 특별대우하여
승진 시켰다고 합시다. 그는 동료들과 인과관계가 좋지만 그래도 불화가 생기게 마련 입니다.  어느날 그 사람이 실수를 하게 되면 어~ 내가 믿었는데? 이상하다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게 됩니다. 그러면 한결같은 반응은 사람을 잘못 보셨다. 그 사람이 일을 잘못했다는 답이 돌아 옵니다.  이는 그 사람의 친화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업무상의 불화 때문에 생기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는 믿었던 A를 내칩니다. 결과는 능력있는 사람이 도태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능력 있고 유능한 사람을 발견하면 스스로 차고 올라올 때까지 잘 키워낼 일입니다. 인위적으로 키우려해서는 그 사람을 단명하게 하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만약 정말 믿을 수 있다고 여겨지면 완전히 믿고 일을 맡긴다음 못 미더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의 능력평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이상. 2013.02.01 여기에 올린 글 "채용"에 쓰여 있는 글을 옮겼음 >

 

 

그런데 오늘(2013.08.09 금요일) 논어 자로(子路)편에 있는 "사소과(赦小過)"라는 말을 만났다.
작은 잘못은 용서하라? 이 말을 보면서 내가 쓴 "세상에 못쓸 사람은 없다"란 말과 함께 "똑똑한 직원은 유유상종하게 하라"라는 말을 떠올렸다.


사람을 쓸 때는 여러가지로 파악하여 신중히 써야하지만 쓰고 나서는 마음것 일하도록 맡겨야 한다. 관리감독은 해야 하겠지만 혹시 조그만 잘못이라도 있을까 못믿어 하면서 살펴서는 곤란하다. 만약 거의 감시하는 수준으로 살핀다면 혼자 해야 한다. 그런 자세로 다른 사람을 쓸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위험에 충분히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글 창업주 레리 페이지-


마침  "사소과(赦小過)"와 함께 구글 창업주 '레리 페이지'의 좋은 말을 발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호 창업, 벤처 창업에 이어 지금은 스타트업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창업을 돕는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망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한다. 망하기 어렵다? 쉽게 망할 수 있어야 과감하게 덤벼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망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서 도전할 수 없는 것이다. 소호도 1인기업도 벤처도 스타트업도 다 마찬가지다. 망하기 쉬워야 한다는 말에 "사소과(赦小過)"나 "세상에 못쓸 사람은 없다"란 말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정계와 재계에서 패자부활법, 창업자가 실패해도 주저 앉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제도를 법제화하겠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사소과(赦小過)" 작은 잘못은 용서하라
어찌 작은 잘 못 뿐이겠는가?  패자부활을 법제화 한다지 않는가? 망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면서, 위험에 충분히 도전하라면서 큰 잘못이라고 용서 못하랴.  일부러 저지른 것이 아니고 실수라면 크던 작던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잘못은 용서하지만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가령 제사에 안 갔는데 바빠서 혹은 깜박 잊고 못 갔다면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고 조용히 그칠 수 있다.
그러나 바쁘고 복잡한데 나 없어도 지낼 제사에 내가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으로 안 갔다면 용서할 수 없다.  생각이 나쁜 사람은 앞으로 좋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잘못이라도 생각이 잘 못 되어 일부러 의도된 고의라면 몰라도 옳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실수한 것이라면 벌칙을 가볍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용납이다. 용서와 용납이 어떻게 다를까? 용서보다는 잘못을 용납한다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작은 잘못은 용납하라."


한문 실력이 짧아 "사소과(赦小過)"의 사赦를 용납하라로 풀어서는 안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소과(赦小過)"를 "작을 잘못은 용납하라" 라고 하는 것은 잘못일까?.
어쩐지 용서하는 말에서 거만함을 느낀다.

 

* 참고문헌
- 전자신문 [최경환의 젊은경제]연재 기사에서 "사소과(赦小過)" 일부 인용

 

 


"세상에 못 쓸 사람은 없다."
"똑똑한 사람은 유유상종하게 하라"
"작은 잘못은 용납하라."
“작은 잘못을 용납해 준다면 형벌이 남용되지 않고 구성원이 기뻐할 것이다”
“작은 허물을 용납하지 아니하면 아래로 온전한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생각이 잘 못 되어 일부러 저지른 잘못은 용납할 수 없지만 옳바른 생각을 가졌는데 실수한 것이라면 벌칙을
가볍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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