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영국인 화가가 그린 1920년대 조선의 모습<펌>.. 조어도(釣魚島)는 배달겨레의 영역... |
이 글에는 영국여인과 나혜석 그리고 오늘날 왜와 지나가 서로 자기 영토라고 우기는 조어도 뿐만 아니라 유구국이 왜, 배달겨레의 영역에 들어야 하는가 까지 내가 나름대로 설명한 글이 복합 되어 있습니다. 그림과 영국 작가에 대한 설명은 퍼온 것입니다. 그리고... 1. 나혜석의 작품집 2. 유구국(오키나와 등 50여개의 열도로 된 나라)이 배달겨레의 영역임을 설명한 글 이 링크되어 있습니다.
유구국이 앞으로 우리 배달겨레가 배달연합으로 통일되기를 바라고 그때는 유구국도 독립국이 되어 배달연합의 일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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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엘리자베스 키스 ㅡ
스코틀랜드 Aberdeenshire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Elizabeth Keith의 가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따라서 불란서의 Mary Cassatt이나 Berthe Morisot처럼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해 여유있는 미술 인생을 보낸 화가가 아니다.
어렸을 때 런던으로 이사해서 가사를 도우며 지낸 평범한 소녀였다. 그녀가 28세이던 1925년 남편을 따라Jessie를 만나러 동경을 방문했다. 당시 일본적십자사는 결핵환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유명인사의 모습을 풍자적인 삽화로 구성하여 책자로 만들어 판매수입을 얻었다.
우연히 그녀가 이 사업에 발탁되어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며 곧 매진된 그림책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이때부터 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1919년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풍습과 인물 등 많은 그림을 그려 도쿄에서 전시했다.
이를 본 일본 목판화 대부인 와다나베가 목판화로 출판할 것을 권유해서 출판된 작품도 대성공을 거두어 자타가 공인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녀의 미술인생은 한국을 그림으로 서양에 소개한 미국여류 화가인 Lilian M. Miller나 프랑스인 Paul Jacoulet처럼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순전한 독학이었다.
1933년에는 영국 미술잡지의 호평을 받으므로서 전례없이 영국의 여왕과 일본왕의 동생도 전시회에 다녀갔다고 한다. 일본 목판화 대가인 호쿠사이나 히로시게와 동렬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프랑스 영국 등에서도 전시회를 가졌으며 사망 후 45년이 지난 2002년 파사데나 Pacific Asia Museum 에서 단독전시회가 있었고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Elizabeth Keith: The Printed Works by Richard)
영국의 스코틀랜드를 과연 영국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왜(倭)가 *유구국(류큐국: 琉球國)을 자기나라라고 하듯 영국도 아일랜드 등 인근의 여러나라를 병탄하였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1920년대, 혹은 193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확연이 알 수 있는 그림들 입니다. 그때는 우리나라의 나혜석도 여류화가로 활동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풍경과 사는 모습을 여러점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였지만 만주나 유럽 등 외국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영국 스코틀랜드 여인이 우리나라를 그려서인지 좀 생소하면서 이색적이기도 합니다.
나혜석(네이버 미술검색 25점의 그림) <= 클릭하면 네이버 미술검색에서 감상 할 수 있습니다.
<나혜석 작품 선죽교>
지금 가보기 여러운 선죽교입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옛 모습을 잃어 갑니다.
서양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평하면서 아름다운데 여기 저기 개발되면서 모두 같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책이나 그림 등 여러가지로 남긴 자료는 아주 귀합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뿌리를 잃으면 나무가 쓰러집니다.
* 유구국(류큐국: 琉球國)
오키나와군도·미야코군도(宮古群島)·야헤잔군도(八重山群島) 등의 50여 개의 섬으로 되어 있음. 독립국이었던 것을 왜(倭)가 병탄하였으며 2차대전이 끝날 때 미국은 장개석이 유구열도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을 염려하였으나 조선의 독립을 조건으로 양보하였다고 함.
유구국의 국왕은 우리 조선에 사신을 보낼 때 스스로를 신(臣)이라 하였으며, 지나(China 支那)는 상국이지만 조선은 부모의 나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오늘날 조어도(센카쿠열도-倭/댜오위다오-지나China)를 가지고 倭와 支那가 다투는 것은 우스운 일로 마땅히 우리 배달겨레의 영역에 들어야 할 것입니다.
<= 클릭하면 유구국에 대한 내용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랫 글은 2005년에 올렸는데 이 곳으로 옮기려고 보니 모두 배꼽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도때비 뉴스를 링크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동아일보 도깨비뉴스(http://dkbnews.donga.com)로 바뀌면서 링크가 모두 깨진 것입니다.
오늘 옮기면서 그림을 모두 다운하여 이 곳에 업로드 하였으므로 다음카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사진들의 링크가 없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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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영국인 화가가 그린 1920년대 조선의 모습<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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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 서울의 설 풍경
Young Korean (1920) - 어린 한국 아이들
Country Wedding Feast (1921) - 시골의 혼례 풍경
A Temple Kitchen, Diamond Mountains, North Korea (1920) - 금강산 한 사찰의 부엌 풍경
East Gate, Seoul, Sunrise (1920) - 서울 동대문의 일출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 (1921) - 함흥 아낙네들의 아침 수다
Marriage Procession, Seoul (1921) - 서울의 혼례 행렬
Korean Mother and Child (1924) - 엄마와 아이
Korean Bride (1938) 새색시
East Gate, Pyeng Yang, Korea (1925) 평양 동대문
Riverside, Pyeng Yang, Korea (1925) 평양의 강변
Two Korean Children (1925) - 두 아이
The Flute Player (1927) - 피리 연주자
The Gong Player (1927) - 징 연주자
A Game of Chess (1936) - 장기 두는 풍경
Wedding Guest, Seoul (1919) - 혼례 하객
A Daughter of the House of Min (1938) - 민씨 가문의 딸
Court Musicians, Korea (1938) - 궁정 음악가
Korean Nobleman (1938) - 한국의 귀족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1939) - 고요한 아침의 땅에서
"Nine Dragon Pool, Diamond Mountains" (1921) - 금강산 구룡폭포 위의 그림들을 이용해 만든 플래시도 인터넷에 널리 퍼져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플래시는 도깨비 뉴스 독자 '구름과 나'님이 제작한 것입니다. 출처 : http://www.hanga.com/gallery.cfm?start=41&I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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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 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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