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에 PC통신이 챙기고 채팅(Chatting)이란 것이 시작 되었습니다.
각 PC통신의 채팅방에 들어가면 나어린 사람들이 장남삼아 별명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38세 때 처음 원로방(元老坊)에서 원로방교실(元老坊校室)을 시작하여 첫 교실을 열고 강의를 하면서 60넘으신 어르신들의 이름을 부르기가 민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출석을 부르거나 할때는 그냥 "존칭은 생략합니다."라고 하고 이름을 죽 부르기도 하였지만 개인을 불러야할 경우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끝에 PC통신 채팅실에서 사용하는 별명을 붙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로방 차원에서 호갖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 원로방 <-클릭..
                   1992년 창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60이상 남녀 어른들의 PC통신 그룹)

  택호(宅號). 옛날에는 결혼하면 여자분들은 대개 친정집 향촌의 이름을 따라 택호를 붙였습니다.
제가 살던 어렸을 때 살던 마을에도 하박굴댁, 원동댁 등 집집마다 택호를 붙여 불렀는데, 그 집 바깥어른에게는 그 택호에 '양반'을 붙였습니다. 하박굴양반 하박굴댁, 원동양반 원동댁..저의 어머니는 숙실댁이었고 그러니 저의 아버님은 숙실양반이었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이 댁(宅)을 '떡'으로 불렀습니다. 제 어머니는 숙실떡이고 아버지는 숙실양반이었습니다.

 

  그런 설명을 당시 PC통신의 여러 게시판에 올리고 호응하는 사람부터 자호(自號)하시거나 동호회 회원들 끼리 서로 작호(作號)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솔잎(SOLLIP) 작호하던 일이 생각 납니다.
난 솔잎여사라고 불렀지만 어떤분들은 솔잎부인이라하고 혹은 솔잎댁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느날 솔잎여사의 부군께서 "나는 소나무입니다." 하고 따님은 "나는 솔방울"이라고 하였다는 말을 솔잎여사에게 들었습니다.
  (이금희) 솔잎부인의 작호 뒷이야기....  http://blog.paran.com/il11/1216244
  `솔잎`, `솔잎 댁`,  OOO님.  http://blog.paran.com/il11/1216248

 

  봉호(封號) 시호(諡號) 등 호는 옛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밀접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호(號)를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옛날에는 20세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號)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의 블로그나 클럽 등에서 보니 동명이인이 많은데다가 역시 이름을 거명하기에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호(號)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號는 어른이라해도 '님'이나 '씨'같은 경어를 붙이지 않아도 불경이 아닙니다.  퇴계 이황의 경우 퇴계선생하고 경어를 붙여도 되지만 퇴계가 말하길 처럼 그냥 號만 불러도 불경이 되지 않습니다.
  동명이인을 구별하고, 이름을 부르기 거북함을 없이하고, 더욱 친근감 있게 부를 수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호를 가지고 시대별 구분을 할 수도 있고.. 의제(毅齊) 허백련(許百鍊) 선생의 경우 젊어서는 의초인(*毅樵人)이라 하다가 나이들어서는 의제(毅齊)라 하였고 노년에 이르러서는 의도인(毅道人)이라 하였습니다.  예술인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號내리'라는 행사를 통하여 실력이 갖추어졌을 때 스승이 엄격하게 號를 내려 주었다고 합니다.
(*의초인, 樵-땔나무꾼 초. 즉 자신을 낮추어 나무꾼에 빗대어 이른 호 입니다.)

 

  저는 처음엔 '일정(一丁)'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 .밝  누  리. '라 합니다. 일정은 첫째 사나이, First Man이란 의미로 자호(自號)한 것이며, ' .밝  누  리. '는 '밝'이 광명을 숭상한 우리민족을 뜻하는 말이고 '누리'가 살아간다는 의미와 함께 살아가는 곳의 의미도 있어서 [밝은 우리의 온 삶터]하면 '밝게 살아가는 것'이고 또한 '밝게 살아가는 곳'이란 뜻도 있습니다.
  이 글은 저의 號 ' .밝  누  리. '를 설명 하려는 것이 아니니 하나만 첨언하자면 "밝"은 "밝달"이 되어 "배달"이 되기도 하고,  "백"이 되어 "밝의민족(* 백의민족)"이 되기도 합니다.
(* 흔희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밝의민족" 즉 광명을 숭상한 민족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금성나씨의 여러 클럽에서도 모두들 號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의 홈페이지나 클럽 등에서도 모두들 號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동명이인을 구별할 수 있고, 이름을 거명하기 곤란한 경우에 좋으며, 별도로 경칭을 붙이지 않아도 경칭이 되며, 친근감 있게 부를 수 있고, 시대별 구분을 담는 등 본인을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설명할 수 있으니 좋겠습니다.

 

제가 여러 사람의 號를 사용하여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하나 소개 합니다.
詩人의 마음...... http://blog.paran.com/il11/121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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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명월이라 하였거늘
바다가 있고
술이있고
임이 있는데
어찌 시가 빠질소냐.

 

백일장을 할까보다.
샅자리 깔아놓고 운을 띄울까 보다.

밀밭 시인
솔잎 시인
은행잎 시인
폴 시인
청 시인
金馬 시인
경연을 벌일까 보다.

 

푸른 물결이 넘어들어
갯변을 휩싸거든
거기 뛰어들어
포말을 뒤집어 쓰고
시인의 마음이 되어
한수 시를 읊을까 보다.

 

(* 밀밭. 솔잎. 은행잎. 폴. 청. 金馬 가 모두 1993년 PC통신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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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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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中和)..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하고
      나타나 절도에 맞음을 화(和)라한다"

1970년대 말의 어느날 위의 글을 어느책에선가 발견하였습니다.
창졸간에 다 외울 수 없지만 열심히 외워서 그 후로 간혹 새기곤 하였습니다.

위의 한문글을 혼자 나름대로 새겨서 아래와 같이 풀이하였습니다.

혼자 생각에 '중'이란 '중용'보다 한 단계 낮은 단계이지만 오히려 범인들이 성취할 수 있는
말로 '중(中)'은 공자나 부처 또는 예수 같은 성인(聖人)의 성취이고 화(和)는 군자(君子)의 성취일테니 성인은 못 되어도 군자는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중화(中和)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하고 나타나 절도에 맞음을 화라한다...
중은 천하의 대도(대도)요 화는 천하의 달도(달도)인바 중과 화에 이르게 하면 천지가 자리
잡히며 만물이 길러지는 것이다.
(위는 저 혼자 풀이한 것이니 원문에 충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원문을 한문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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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中이라하고 나타나 절도에 맞음을 和라한다>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중은 천하의 대도(大道)요 화는 천하의 달도(達道)인바>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과 화에 이르게 하면 천지가 자리 잡히며 만물이 길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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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1990년대가 되어 PC통신이 생기고 게시판이란 것이 운영되자 간혹 위의 글을 원용하여 여러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는 하였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우선 원로방(元老坊) 노변정담(爐邊情談)에 만도 찾아지는 것이 5개나 됩니다.

1993.12.30 즐거운 송구영신. http://blog.paran.com/il11/1216238
1993.12.31 중 화(中 和) http://blog.paran.com/il11/1216305
1994.04.01 中 和(중용과 화목) http://blog.paran.com/il11/1215906
1995.02.24 제가아는 두가지유형의 인생..!!  http://blog.paran.com/il11/1215752
1996.10.02 오직, 상경하애 하고 상부상조 하고...!!!  http://blog.paran.com/il11/1218840

 그런데 이제 인터넷 세상이 되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 보았더니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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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일컫고, 그것이 발현되어 상황의 절도節에 들어맞는 것을 화和라고 일컫는다.  중中이라는 것은 천하天下의 큰 근본大本이요, 화和라는 것은 천하사람들이 달성해야만 할 길達道이다. 중中과 화和를 지극한 경지에까지 밀고 나가면, 천天과 지地가 바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고, 그 사이에 있는 만물萬物이 잘 자라나게 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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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KBS 라디오 시사고전에서는 음성으로 해설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라디오시사고전" 민족문화콘텐츠 연구원 박재희 원정 육성 듣기

                                     (소리가 안들리면 볼륨을 키워 보십시요)

   대도무문을 말하는 정치인이 있었지만 이 '中和'의 "천하의 대본과"는 다른 말이라고 생각 합니다.
中을 이룰 수 없어도 "희로애락이 나타나 절도에 맞도록"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루었으면 벌
써 군자지경(君子之境)에 이르렀을 터, 그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다만 항시 마음에 두고 스스로를 닦는데 사용하고자 할 따름 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화락전가(和樂傳家), 화기만당(和氣滿堂), 해석연거(海石燕居), 앵비어약(鶯飛魚躍) 등과 같이 和를 강조한 말이 많은 것을 보면 中和가 멀리 있다고 근신만 하는 것은 삶의 바른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왔기 때문 입니다.,

 

 2011년이 저물어 가는데 11월 11일이 1천년에 한 번 돌아오는 빼빼로데이라는 말이 횡횡하고, 그 날에 맞춰 애플 아이폰4S가 판매된다고 하고, 정말 3011.11.11이 되려면 1천년이 남았는데 1천년전 1011.11.11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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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오륜(五倫)" 

                    군신(君臣)의 의(義) 민주절(民主切)
                    부자(父子)의 친(親) 남북절(南北切)
                    부부(夫婦)의 별(別) 평등절(平等切)
                    장유(長幼)의 서(序) 자유절(自由切)
                    붕우(朋友)의 신(信) 사상절(思想切)


  오륜(五倫)이 끊겼다.
제가 위 내용을 1990년 경에 처음 게시판에 올렸는데 그로 부터 20여년이 흘렀는데도 우리
의 현실하나도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수신제가라 하였으니 저 스스로를 먼저 갈고 닦아야 하겠으나 그러니 더욱 가르치고 배우고 그래서 오륜이 쟁쟁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배우는 효(孝). 보는 효. 듣는 효. 가르치는 효. 실행하는 효..

효는 모름지기 실행하고 실제 몸으로 겪는 것이 제일 입니다.  부모나 어른이 자식이나 어린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익지 않아 마음은 있어도 행동하지 않는 효를 하게 되니 효를 행하지 않는 것이나 름없이 되고 맙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지 않게 된, 남과 북으로 끊겨 사는 우리의 현실에서 몸으로 효(孝)를 보여 주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멀리서 전화를 들고 건강하시라고 혹은 용돈 보내 드리겠다고 하여봐야 그것을 보는 아이들은 효(孝)의 실체를 깨닫기 어렵습니다.  자식이 보는 앞에서 노부모가 주무실 아랫목이 따뜻한지 손을 넣어 보고, 추운날 옷을 먼저 입어 따뜻이 한 후 이 옷을 입으시도록 하는 모습을 몸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합니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욱 효행을 깨닫고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한 번이라도 더 자식을 데리고 노부모 찾아뵙고 효행을 몸으로 보여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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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오륜(五倫)"
아랫글은 제가 1993년 10월 26일 원로방 노변정담에 올렸던 글입니다
http://club.paran.com/club/home.do?clubid=newsilver-bbsView.do?menuno=484-clubno=9-bbs_no=03i6Z
(위의 URL을 클릭하면 당시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끊어진 오륜"은 내가 1980년 컴퓨터를 시작하여 1990년 PC통신이 등장하고 게시판이란 것이 생겼을 때 올렸던 글 중 하나 입니다.    당시는 인터넷은 없었고 PC통신이라 하여 하이텔과 천리안 등 몇 개 업체가 서비스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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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오륜(五倫)"

               군신(君臣)의 의(義) 민주절(民主切)

               부자(父子)의 친(親) 남북절(南北切)

               부부(夫婦)의 별(別) 평등절(平等切)

               장유(長幼)의 서(序) 자유절(自由切)

               붕우(朋友)의 신(信) 사상절(思想切)

 

      우리가 해방후 우여곡절 끝에 국리와 민복을 다소 이루었으나

    소탐 대실의 오류를 범하여 강상(綱常)이 무너지고 오륜이 끊어져

    마침내 우리 문화의 절폐를 염려할 지경에 이르렀음은 주지의 사실이라.
 
   

    첫 째. 군신의 의(義)가 민주로 끊겼으니

   지금에 이르러 군신이란 말을 국(國)과 민(民)으로 볼때 민(民)이 주인됨
 은 당연할 것이나 "나라가 무었이냐, 내가있고 나라가 있는것이지 나 없는
 나라가 무슨 소용이냐" 하는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적당주의
 가 만연하여 나라는 나를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망발을 하는자들이 있으며.

 

    둘째. 부자의 친(親)이 남북으로 끊겼으니

   남북으로 흩어진 이천만 이산 가족이 반세기가 다돼도록 내왕은 고사하고
  그 생사마저 모른채로 살아가고 있으며 설령 남쪽에 있어 이산의 슬픔이
 없다해도 고향을 지키는 부모와 도회지에서 메마른 삶을 사는 자녀로 갈려
 그 부자간의 친(親)이 끊긴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개이며.


    셋 째. 부부의 별(別)이 평등으로 끊겼나니

   평등을 잘못 알아 부부가 그 다름이 있다는것을 "평등한데 무슨 소리냐"
 하며 지아비와 지어미의 도리가 서로다름을 혼동하여 혹은 음양이 바뀌고
 혹은 순리가 흐트러진채 오직 평등만을 주장하여 제할바를 다하지 아니하고
  부부가 서로 다른 도리를 지키지  않는 자들이 허다하며


    넷 째. 장유(長幼)의 서(序)가 자유라하여 끊겼나니

   자유라는 것이 방종(放縱)을 함께하는 것으로 잘못알아  노소동락(老少同
 樂)과 상경하애(上敬下愛)가 즉 장유간의 차례인 것을 모르고, 장(長)은 권
 위만을  내세워 유(幼)의 많은 노력과 닦음으로 이룬 학문의 경륜(經綸)을
 무시하고, 유(幼)는 자유만을 내세워 오랜세월 풍상을 겪으며 이룬 연륜(年
 綸)을 무시하여 어른을 공경(恭敬)할줄 모르고, 차례를 지키지아니하며

 

    다섯째. 붕우(朋友)의 신(信)이 사상(思想)으로 끊겼으니

   죽마고우 다정한 벗끼리도 좌우(좌익과우익)로 나뉘고, 남북(남한과북한)
 으로 나뉘고, 동서(영호남)로 나뉘고, 빈부(貧富)로 나뉘고, 노사(勞使)로
 나뉘고,여야(與野)로 나뉘어 한번 서로 다른길을 걷게되면 전혀 용납치아니
 하고 혹은 죽이고,혹은 헐뜯고 하면서 붕우간의 신을 생각치 아니 하는구나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을 우리 배달 겨레는 밝음을 숭상하고 예의와 범절
 을 잘지키며 살아왔거늘
  오륜을 말하면 일부 사람들은 공자의 유학(儒學)에서 발원한 외래의 고리
 타분한 구학문이며 우리에게는 그 폐해가 오히려 많았다고 주장 하는데,

  우리나라는 주자학이 흥성하기 훨씬 이전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었거늘
 송나라 이후에 완성된 주자학과 비교함은 무리일뿐 아니라
  조선조 오백년동안 집권층이 자기들의 권익을 위해 다른 학문을 사문난적이
 라하며 박해하여서이지 주자학 그 자체가 나빠서는 아니지 않는가.

 

    아하!
 끊어진 오륜이여...... 절폐된 문화여.....
 우리 배달 겨레의 넋이 훨훨 살아나듯이 다시 피어날 지어다.
         
                              .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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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 1990년대 처음 게시판을 올릴때 호를 일정(一丁)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밝  누  리. 입니다.>

 

   1992년에 창설된 원로방의 슬로건...

    "앞선이의 슬기로운 삶을 열어가는 원로방"

 원로방(元老坊)에서는 "앞선이"를 앞서 낳서 앞서 살아온 지혜로 어린이와 젊은이를 가르친다는 의미로 고령자를 "앞선이"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고 실제 사용하여 왔습니다.
  여기에는 노인 혹은 늙은이란 말이 어린이나 젊은이란 말에 비하여 어감이 나빠 새로운 말을 찾자는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역사는 반전 한다."
영국의 석학 토인비가 한 말입니다.
안 그렇다고 하더라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앞으로 달라짐이 있을 것이고 우리의 아름다운전통인 효행(孝行)은 앞으로 쿤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효행(孝行).. 모름기지 저 부터 실천할 일 입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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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암(遞菴) 나대용(羅大用 1556~1612)
임진왜란 때 수군(水軍)의 장군, 거북선의 건조 책임자
본관 금성(錦城). 자 시망(時望). 전라 나주 출생.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 후에도 새 전함인 창선(鎗船)을 창안 건조하였고, 1610년(광해
군 2)에는 남
해현령에 제수되어 해추선(海鰌船)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여 발명하였으
며, 1611년에는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喬桐水使)에 제수되었습니다.

나대용 장군은 전공이 혁혁하고 파란이 많은 수군장이며, 우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조선기술자(造船技術者)로 평가됩니다.

  나대용 장군의 사적지를 복원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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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년에 국가예산으로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연구하던 오룡방죽을
        복원한다.

둘째: 서거 400주기를 맞는 내년에 나대용 장군 동상을 제막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한다.
셋째: 진해의 해군기지에 나씨문중 특히 학생들이 참가하여 나대용함을 참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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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오룡방죽 복원
        수년전에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의 오룡방죽을 복원하자는 글을 제가 올린적이 있
        습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정부예산으로 지금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 서거 400주기 행사

         1. 오룡방죽 복원공사 완공
         2. 나대용 장군 동상 제막식
        내년 탄신 추모제(2012.04.21 토요일)에 맞추어 완공하고 동시에 나대용장군의 동
        상도 세워
  제막식을 한다고 합니다.

 셋째: 진해 해군기지 나대용함 및 거북선 참관행사
        내년에 어린이 160~200명(버스 4~5대)을 "진해 해군본부 나대용함 및 거북선 참관
        행
"에 참가토록 한답니다.   내년 04월 07일이나 14일. 서울 대구 광주 등 전국 각
        지에서 학
생 위주의 참관단이 진해 해군기지로 모여서 나대용함을 참관한다고 합
        니다.

  별도로 지방문화재인 소
충사를 국가문
화재로 지정
받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 전라남도 문화재 기념물 제 26호:
나대
용장군 기적비, 나대
용 장군의 영정과 위
패가
봉안된 '소충사(昭忠祠)'
나대용장
군의 생가, 묘소,
방죽골, 장군바위 등>


 

  나대용 장군 . 소충사(昭忠祠)

  거북선의 날 혹은 나대용의 날.
저는 수년전에 나주시에 나대용을 호남의 인물 나아가서 대한의 인물로 숭상하기 위하
여 나주 오룡
방죽을 복원하고 나대용의 날 축제행사를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제가 외국에 장기거
주하게 되어 살피지 못하다가 올해 나주시에서 진행하는 축제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산강문화축제가 2011년 10월 27일 부터 시작 된다고 합니다.
다른해와 달리 올해는 4대강 준공을 겸하여 평년보다 성대하게 치러진다고 하는데 그래
서 매년 문화
축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아닌 따로 만들어진 팀에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행사에서 왕건함을 건조하여 영산강에 진수 시켜 운항한다면서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
는 쏙 빠지고 없었습니다.

나주 시청의 해당 팀에 전화를 하여...

 " 왜 거북선은 행사에 없느냐? 나주에 인물이 많지만 나대용도 훌륭한 분 아니냐? 
   4~5일 정도 축제 기간을 정하여 매년 행사를 하는 게 옳다.  지금 아산,여수,충무 등 각지
   에서 거북선 관
련 축제를 하지만 거북선을 직접 설계하고, 이순신 장군에게 설계도를 가지
   고 가서 건조를 건의하고, 이순
신 장군의 휘하에 조선장(造船將. 배 만드는 장군)으로 직접
   거북선을 건조한 나대용 장군이 왜 행사에 빠
진단 말이냐?
  나대용 장군의 날 혹은 거북선의 날을 만들어 "나대용(혹은 거북선) 축제"를 하는 것이야 말
  로 관광진흥
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고 하였더니...

 그 내용을 정리하여 제안서로 제출하면 시장님과 면담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나대용 장군의 종제(사촌동생) 나치용 장군은 돌격장(突擊將)입니다.
이순신 장군 휘하의 조선장(造船將)과 돌격장(突擊將). 이는 노산 이은상이 쓴 "태양이
비치는 길
로"란 책에 나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조선장과 돌격장이 모두 거북선을
몰고 왜놈들과의 해전
에 참가하였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조선장이 배를 몰고 해전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 합니다.
돌격장이 배를 몰고 해전에서 돌격하여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도 당연 합니다.

  조상의 전통을 물려 받은 나대용, 나치용 장군.
배를, 그것도 전투함을, 그것도 세계에서 유래 없는 철갑선을 느닷없이 하루 아침에 만
들었겠습니
까?
회원대장군 나유 선조는 고려시대에 삼별초를 토벌함에 있어 제주도에 출정하였고. 여
몽 연합군이
왜국을 쳐들어 갈 때 2,400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배를 건조하는데 참가하였
을 뿐 아니라 1, 2차 여몽
연합군의 왜국 정벌에 장군으로서 참가 하여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고려의 선박건조술은 세계 최고였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보다 220여년 전인 1270
년대에 세계에
서 제일 크고, 제일 안전하고, 화물이나 사람을 제일 많이 실을 수 있는 배
를 고려가 만들었 습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신대륙을 발견할 때 사용한 배는 여몽연합군의 왜국 원정으로부터 220여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고려 배보다 훨씬 작고 탑승인원이나 화물적재량이 1/3~1/4
에 불과 하였다고 합니
다. (* "한국7대 불가사의 참고. 이종호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그와 같은 배를 만든 사람가운데 한 분이 바로 회원 대장군 나유 선조 이십니다.
그러니 나대용 나치용 장군이 조선해군에서 거북선과 같은 세계 최고의 전함을 건조하
고 그 배를 몰
아 돌격하여 왜병을 무찌른 것은 선조인 나유 대장군 등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라 생각 합
니다.

  나대용의 날을 만들어 이를 기려야 합니다.

나대용 축제를 만들어 나주와 전라도를 빛내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빛내야 합니다.
나대용 장군 추모제는 매년 04월 21일 과학의 날 열립니다.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과학, 거북선 창안을 기념하는 추모제를 과학의
날 치르고 있
습니다.
거북선을 창안한 오룡방죽의 복원과 나대용 장군의 동상제막에 이어 이제는  "나대용
축제
"를 매
년 치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비단 할아버지에 비단자손"
우리는 훌륭한 조상을 빛내고 이를 물려 받아 훌륭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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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포 나연주(竹圃 羅連柱)

진도 출생. 소전 손재형 선생 사사. 부산 동아대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학
생회장 역임-타지역 사람으로서 최초로 학생회장에 뽑혔음)

우리나라에는 서예가도 많이 계시고 서예에 취미를 가지신 분들도 많습니다.

지금 활동하고 계시는 서예가 가운데 죽포 나연주 선생님이 계십니다. 수 많은 전시회
하셨
지만 지나(China 秦 중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에 7차례나 전시를 하셨을 만큼 활발
히 활동
하시면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부산 동아대학교 졸업한 후 목포시청에 재직하다 사직하고 처음엔 거문고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장형(長兄)께서 거문고를 부숴뜨리며 반대하셔서 창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어지반대에 할 수 없이 어렸을적에 소전 손재형 선생에게 사사받았던 서도의 길에 들어 거의 50년을 한결같이 서도에 정진하고 계십니다.

<사진>


위의 사진들은 어느분이 네이버 카페에 올려 놓은 것인데 죽포 형님 자신은 작품이 인터넷이나 신잡지 등에 실리는 것을 싫어하시지만 수없는 기자들의 예방과 사진취재를 거절할 수 없어 간혹 한 것이 이런 사진이 인터넷에 오른 이유인 것 같다면서 본인은 모르는 사진인데 이상하다고 하니다.

특히 자신의 작품이 공공장소에 걸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마 모작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그럴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죽포 선생의 작품은 첫째 미려하고 둘째 웅장하고 셋째 힘이 있습니다.

한자와 한글의 모든 서체에 능하고 모든 작품을 소장을 원하는 사람 앞에서 직접 휘자하여 낙관 하는데, 곁에서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처한 입장에 적절한 작품을 주는 것을 보면 이상하고 신통하기도 합니다.

  가령 내가 어떤 분을 모시고 갔다면 그 사람과 짧은 시간 대화 후 그 사람 이 원하는 문장이나 문구가 있으면 그대로 써 주시면서도 따로 그 사람이나 성격이나 인품 혹은 처지에 맞는 작품을 따로 써 주십니다.

"道德이 美麗하고 仁義를 表準으로 하라

 도덕이 미려하고 인의를 표준으로 하라

 

위의 글은 국한문 혼용인데 오래전에 제가 소장한 죽포 형님의 작품으로 뜻이 좋아 지금도 선용합니다.

10.26..
며칠후면 10.26이 되고 서울시장에 나경원과 박원순 가운데 누군가가 당선 되겠지만. 1979년 10.26 아침에 저는 죽포 형님과 함께 자고 일어나 라디오를 켜니 이상한 곡이 흘러서 이상하다 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총격을 받아 서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죽포 형님이 쓴 글이 "희정(希靜)"입니다.
지금도 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혼자 생각으로 "고요하게 바란다 혹은 정숙하게 바란다"
대통령이 서거하였으니 이럴 때의 처신을 가르치는 말이 "희정(希靜)"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希靜.. 길게 위에서 아래로 두자를 내려 갈겼는데.. 靜의 오른쪽 "爭"의 필획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훌륭한 한점의 세로 족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십계명을 십폭병풍으로 써 내시는 유일(지금까지 유일한지는 알 수 없지만)한 서예가 이시기도 합니다.

 죽포 형님은 전국의 비석을 50여점 쓰셨다고 합니다.
여러 명문가의 비석문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홍천 말고개 육탄용사 호국전적비 충용탑의 비문을 우남 이승만 대통령이 쓰셨던 것이 마모되어 1999년 재 조성하면서 죽포가 그 글을 쓰는 등 공공시설물에도 많은 글을 쓰셨으니 살필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참고로 소전 손재형 선생은 1970년대 커다란 "용(龍)"자 한 글자로 통령상을 받았고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하셨던 분입니다.)

"落花無言 人淡如菊"
낙화무언 인담여국
(말없이 지는 꽃이여.. 내 마음도 저 꽃 같구나..)

위의 문구를 혼자 이렇게 풀어보며 올해도 꽃이 지는 시절이 되었으니...
생각에 잠깁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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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생...

카테고리 없음 2011. 10. 12. 15:51

여기에 유튜브(http://kr.youtube.com)의 나훈아의 라이브 콘서트를 한 컷 링크합니다.
물론 저작권과 상관이 없는데다 광고없이 30분 가량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나훈아 Super Live 콘서트#4 4
          
http://www.youtube.com/watch?v=vgiFDcaRbG8&feature=related
           http://www.youtube.com/watch?v=vgiFDcaRbG8
      (위 URL을 클릭하고 화면크기와 볼륨을 조정하면 회원가입 하지 않아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1967년 지나가는 엿장수 리어카에 실린 전축을 샀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버지를 졸라 방에 들였고 처음 산 레코드 음반이 핸델의 수상
의 음악과
마리오란자와 스테파노가 부른 축배의 노래 등 이태리 민요가 들어있는 테너
음반이었습니다.

모노 스피커 하나가 몸체 아래에 커다랗게 달린데다 위에 턴테이블이 달려 있어 엘피 음
반을 올려
놓으면 달그락 거리는 잡음이 나는 전축이었지만 군에 입대할 때까지 이 전축
으로 퍽 많은 음악을
들었습니다.

서양고전음악(소위 클래식)뿐 아니라 우리고전음악(국악)까지 가리지 않고 감상하였는
데 마지막
에는 보유한 클래식 음반이 대부분 복제판이지만 일부 원반까지 포함하여 500
여장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제 생활의 일부 입니다.
사무실 집 또 자주 들르는 곳 어디라도 음악이 흐르는 것을 좋하 합니다.
요즘은 컴퓨터만 있으면 음악감상에 아무런 애로가 없습니다.
특히 유유튜브(http://kr.youtube.com)를 애용 합니다.
유튜브에 접속하여 듣고싶은 곡명이나 가수명을 입력하면 많게는 수십개의 곡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입맛대로 골라 들으면 됩니다.
컴퓨터 환경이나 인터넷 회선의 영향으로 간혹 멈추거나 끊기는 경우가 있지만 참을만 합니다.
(접속자가 많거나 회선이 느리면 자꾸 끊기므로 한가한 시간에 다시 접속 하십시요)


이어서 지난 06월에 tvN 출연하여 우리나라의 폴포트라는 말을 들은 최성봉의 동영상 링
크합니다.
조회수가 1,386,368회 달할 만큼 인기가 있었으니 제 홈에 오신 여러분들 께서도 보신
분들이 계시리라 생
각 합니다.

최성봉_Korea's Got Talent 2011 Audition EP1
        
http://www.youtube.com/watch?v=4nSJu6fSQRI
        (고아, 세살에 고아원에 들어가 다섯살에 도망쳐 나온 후 혼자 22살까지 살아온 청
        년이
  수줍어하며 부르는 노래에 감명이 있습니다)

1971년.
이태리의 유명한 테너 스테파노가 광주광역시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광주 무등산 중머리(중봉)에 올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연습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전 마침 중머리에 올라가 있어서 그의 가공없는 육
성을 들을
수 있은 행운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져야 소리가 나는 이태리어와 비슷하여 세계에서
가장 훌륭
한 명창이 나올만 하다고 합니다.  카루소 마리오란자 스테파너 파바로티 등 은 명창이 이태리인들인데 요즘들어 우리나라의 소프라노 조수미, 테너 이용훈 김재형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런 조짐이 보입니다.

또 하나의 동영상 사이트
http://www.flixxy.com
05. 고아 가수지망생  최성봉 (22)
     
http://www.flixxy.com/korea-talent-choi-sung-bong.htm
      Korea's Got Talent - Choi Sung-Bong
(이 사이트에는 영어 대사가 붙어 외국인들이 최성봉에게 관심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의 검색창에 최성봉이라고 쳐서 위 화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식재산권과 관련없이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세종대왕이 한글에 지식재산권을 주장하였습니까?
허준이 동의보감에 지식재산권을 주장하였습니까?
모든 문화는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문화가 지식재산권에 걸려 마음대로 볼 수도 들을 수 도 사용할 수
도 없게 되
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이트 들이 그나마 목마름을 풀어주니 다행입니다.

 


 .밝  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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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시대라는 말이 아주 익숙한 말이 되었습니다.
신문을 보면 요즘 87살에 자연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사망신고자 가운데 87살이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년 후면, 이 나이가 90살이 넘어가게 되고 그러면 보편적인 백수 시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전 삼보 컴퓨터 이용태 회장.
이 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든 분입니다.
한전의 전신주와 전신주 사이를 연결하여 낙뢰 예방 용도로 쓰이는 광케이블을 초고속 인터넷 선로로 활용하는 "두루넷"을 창업하기도 하였는데 이 두루넷이 지금은 SK브로드밴드로 변신하였습니다.
  또한 "삐삐 015 나래텔"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저하고는 테헤란로에 있는 이 "015 나래텔" 본사의 건물에 원로방 교실(*)을 설치하여 60세 이상 앞선이(**)에게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펼친 인연이 있습니다.
(* 원로방 교실: 60세 이상 남녀 앞선이에게 무료로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쳐 주는 컴퓨터 교육장)
(** 앞선이: 노인의 새 말. 앞서 낳서 앞서 살아온 지혜로 어린이 젊은이를 이끌어 주고 가르쳐 주는 앞선이)

  이용태 회장이 올해(2011년) 80세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TV에 행복전도사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는 것을 두어 달 전에 시청하였습니다.
"나의 아버님은 99살까지 장인은 102살까지 사셨으니 난 지금 80살이니까 앞으로 20년은 더 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 나이는 40살입니다. 60살까지 살던 시대와 비교하면 40살이라야 20년을 더 살 것이니 40살이라는 말입니다."

  행복전도사로서 강의하다 보니 좋은 쪽으로 강조하였겠지만,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나이에서 40살을 빼고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만약 70살이라면 앞으로 30년을 더 살 것이니 30살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30년 여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은 억지로 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옛 시절에는 가난이 무섭고 굶어 죽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시절이 되었으니 서로 애호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40살 길어진 인생.
서로 애호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 길어진 40년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입니다.

 .밝  누  리.  나 용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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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쫒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순가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아래 노랫말은 "황홀한 고백" 입니다.

저는 그 보다 "쓸쓸한 연가"가 더 소담스럽게 여겨 집니다.

이 노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황홀한 고백 =

 

나 그대 방에 놓인 작은 그림이 되고 싶어

그대 눈길 받을 수 있는 그림이라도 되고 싶어

 

나 그대 방에 놓인 작은 인형이 되고 싶어

그대 손길 받을 수 있는 인형이라도 되고싶어

 

그대 사모하는 내마음을 말 하고 싶지만

행여 그대 더 멀어질까 두려워

 

나 그저 그대 뜰에피는 한 송이 꽃이 되고싶어

그대 사랑 받을 수 있는 어여쁜 꽃이 되고 싶어

 

 

 

   .밝  누  리.  나 용 주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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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이 세상만물을 만들 때 동물들에게 나이를 30살씩 주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나이를 모두 나누어 준 후 곰방대를 입에 물고 퇴침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서 쉬고 있는데 밖에서 웬 소우는 소리가 "우머~ 우머~" 들려 왔습니다.

  "우리의 수명을 단축해 달라!"
웬 소란인가 싶어 곰방대로 봉창을 밀쳐 열고 내다보니 소란놈들이 몰려와서 프랑카드까지 펼쳐들고 데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수명을 단축하여 달라고 하느냐?"
 "아이고 저희는 밭갈고 논갈고 짐나르고 뼈가 빠지게 일하는데 툭하면 도살장으로 끌려가 도끼로 정수리를 맞아 죽는데 무슨 오래 살 맛이 나겠습니까? 우리의 수명을 단축하여 주십시요."

하느님은 하는 수 없이 소의 수명을 30살에서 15살로 단축하여 주고 15살은 조마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또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멍~멍~" 짓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봉창으로 내다보니 이번에는 개들이 프랑카드를 들고 몰려와서 데모를 하는 것이엇습니다.

  "우리의 수명을 단축해 달라!"
 "아이고 저희는 밤으로 잠 못자고 집 지켜주고 집주인 아이가 똥을 누면 방에까지 들어가 먹어 주는 등 온갖 봉사를 다 하는데 여름만 되면 탱자 울타리에 목을 매달아 돌맹이로 머리를 두드려 잡아서 보신탕을 끓여 먹으니 전혀 오래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하느님은 개의 수명을 15살로 줄여주고 15살은 조마니에 담아 두었습니다.
엇! 그런데 이번에도 "찍~ 찍~"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소란하기에 봉창으로 내다보니 원숭이들이 몰려 왔습니다.

  "우리의 수명을 단축해 달라!"

 "너희는 왜 또 수명을 단축하여 달라고 하느냐?"
 "아이고 저희는 서커스 따라 다니며 숫자를 맞추고 수레를 끄는 등 온갖 재주를 다 부려 즐겁게 하는데 동물원에 가두어 두고 종이를 비스켓이라고 속여서 먹게하여 배탈이 나도록 만드는데 무슨 오래 살 맛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이번에도 15살을 떼어 조마니에 넣어 두고 고민에 잠겼습니다.
모두 45살이 조마니에 담겼는데 그를 어디에 써야할지 궁리하고 있는데 또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또인가 싶어 놀라 내다보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데모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수명을 연장해 달라!"

 "너희는 또 왜 수명을 늘려 달라고 하느냐?"
 "아이고 저희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인데 어찌 다른 동물들과 같이 30살만 산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여 주십시요."

  하느님은 잘 되었다 싶어 조마니에 있는 45살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의 인생은 사람. 소. 개. 원숭이. 주인없는 인생 등 다섯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 30살 까지는 원래 하느님이 준 나이이니 잘나거나 못나거나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 가게 되었습니다.
-. 45살 까지 15년은 소의 나이이니 밭갈고 씨뿌리고 일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 60살 까지 15년은 개의 나이이니 집 지키고 아이 키워 결혼 시키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 75살 까지 15년은 원숭이 나이이니 이는 다 빠지고 비스켓을 먹으며 손자 엉덩이를 두드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 75살 이후는 하느님이 준 나이가 아니므로 자칫하면 노망이 나기도 하고 남의 나이를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00세 까지 장수하는 시절이 되었으니 이 이야기도 나이를 조정하여야 하겠지요?
앞으로 사람이 140세 까지 장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이고 장수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은 기독교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 배달겨레의 *하느님은 **삼신이 하나된 하나님 입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말 하나님을 무척 부러워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우리말 하나님을 차용하여(빌려)가서 기독교의 신(God) 여호와를 하나님(혹은 하느님)으로 부르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말을 빌려간 것이지 우리의 삼신이 하나된 하느님과는 다릅니다.

 * 하느님(하나님. 하늘님. 한알님. 한배님. 한아님. 천제님. 천황님. 천왕님)
** 삼신(천지인 혹은 환인. 환웅. 환군<단군>)

 

 

 .밝  누  리.  나 용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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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서 돌아오면... 이 글은 내가 1993년에 원로방의 노변정담에 올린 글입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읽어 보니 말의 선택이 좀 이상하다 싶은 곳이 있긴 하지만, 딱 이 무렵. 하지감자 캐고. 보리 추수 마치고. 텃밭에 알맞게 상추가 자라오를 때의 모습이다 싶어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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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서 돌아오면......  93/06/11 23:10 | 조회수 73 
 
 화순 적벽은 "김 삿갓"이 세번째 들려서 영면한 곳입니다.
 영월의 비석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서 옛 사람들이 새긴뜻이 "주천"에게
게까지 전달 되었으니 말씀대로 무슨 인연인가 보옵니다.
 
 "전자 신문" 기자의 래방을, 그리고 여러분의 감자익는날의 방문을 고대 합
니다.
 다만 워낙 은둔의 세월을 살아온지라 은근히 두려움이 앞을서는데, 나 보다
 우리 할멈이 더 어려워 하는듯 하오니 조금은 여유를 둡시다.
 집집이 여러분이 말하는 원로들만 사는 이곳에서는 그같은 일이 한마을의 행
사가 될터이니 여러분의 이해를구하는 바 입니다.
 
            " 원로만 사는 마을 "
      굽은허리 토닥이며 들에있다 돌아오면
      외양간의 송아지며 돼지막의 꿀꿀이며
      대처로간 아들딸대신 가솔들이 반기누나.
 
      뒤안밭의 상추캐어 앞여울에 다듬어서
      두늙은이 저녁이며 가솔들의 먹거리며
      요리조리 챙기며는 하루해가 가는구나.
 
      개울너머 꺽정노인 행길건너 희양아제
      땀은뻘뻘 진은절절 부친힘을 기울여서
      깊는밤을 아끼면서 보리타작 하는구나.
 
      허리굽은 우리할멈 미수가루 곱게빻아
      이단지는 큰놈주고 요단지는 둘째주고
      저단지는 큰딸주고 그단지는 둘째딸주고.
 
      별은총총 달은휘영 이밤가면 언제일꼬
      밤이깊어 새울어도 고단한줄 모르고서
      사리사리 고운사연 바리바리 엮는구나.
 
 집집이 원로들만 사는 이 궁벽한곳이 어떻게 이렇게 고울수가 있을까? 등이
라도 긁어줄 반려가 있는 이 "학천"은 그래도 다행이지만 이부자리 찬바람을
 혼자 녹이며 사는 홀몸 늙은이들의 애환을 어떻게 알수 있으리오. 옹달샘 주
인되어 고운 처녀아이의 칭송을 받음은 이 산골에서는 있을수 없는 그냥 꿈일
 뿐입니다.
 
 내일 모이시는 님들과 모레 행사에 가시는 님들 즐거우소서.
                 
                    - 학  천  -
 이태휴
학천 입니다. 
=============================================================================
 
  윗 글은 1993년 당시 하이텔 원로방(지금은 파란 클럽 원로방)에 제가 올린 글입니다.
학천 이태휴. 그 분은 당시 제가 하이텔 아이디(당시 유료였음)가 없어서 빌려서 쓴 아이디의 주인이고요.
당시 그 분이 사는 모습을 보고 내가 쓴 글인데, 내가 젊은이로서 시골생활을 동경하여 그려낸 것을 원로방의 노변정담()게시판에 올렸기에 문맥에 전자신문이라던가 하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 글의 원문은 '보리밭에서 돌아오면.....<= 좌측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링크하였습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우리말로 따뜻한(溫)이며 ,모든(蘊, 全)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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