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신지명사십리薪智鳴沙十里와 정도리 구계등 몽돌해변의 추억..

 

 

명사십리鳴沙十里
울명鳴 모래사沙 모래가 우는 십리에 이르는 해변? 그런 말일까?
완도에서 십여분 배를 타고 들어가면 신지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에 신지명사십리薪智鳴沙十里 해수욕장이
있다. 이 신지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다른 이름은 모래를 밟으면 우는 소리가 나서 ‘울모래등’이라고 한다. 명사(明沙)가 아닌 명사(鳴沙)라 쓰고 있으며, 이 울모래가 거의 직선으로 동서 10리나 뻗어 있어서 명사십리해수욕장이라 한다.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모래를 밟으면 우는 소리가 나서 '울모래등'이라고 불리는데 3.8Km에 이른다.>


신지도는 이젠 섬이 아니다.
2005년 1,110m 길이의 신지대교가 개통 되어 연륙이 되었다.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던 신지도를 이제 차를 타고 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 곳 신지도에 신지도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다.


우리나라에 명사십리가 몇 곳일까?
원산에 있는 명사십리(明沙十里)는 한자가 다르다. 울명鳴이 아닌 밝을명明이다.
내가 알기엔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명사십리는 세 곳이다. 갈 수 없는 북한의 원산의 명사십리明沙十里, 이제는 새만금 방조제로 육지와 거의 연결된 고군산열도의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그리고 완도의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등이다. 원산과 선유도의 명사십리明沙十里와 완도군 신지면의 명사십리鳴沙十里리는 한자가 다르지만 우리말로는 구별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여러곳에 명사장 혹은 명사십리라고 불리는 해변이 있으나 모두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하여 임의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명사십리는 세 곳이다.


 그리고 몽돌 해변은 또 몇 곳이나 될까?
몽돌 해변 혹은 몽돌 해수욕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은 아니지만 전국 곳곳에 제법 있는 것 같다. 큰 섬이나 이름난 해변에 크고 작은 몽돌밭이 여러 곳 있다. 내가 가 본 곳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몽돌해변은 거제도와 남해도에도 있지만 완도 정도리 구계등 몽돌해변이다.

 

    < 지도의 좌상 -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장도. 우중 - 모래가 운다는 울모래등. 좌하 - 몽돌해변 정도리 구계등>


1970년대 중반이었니 벌써 40년 되었다.
깨복쟁이 친구들과 완도 신지도의 명사십리로 해수욕을 갔다. 하룻밤만 해수욕장에서 지내고 다음날은 도망쳐 완도로 나왔고 그래서 찾아간 곳이 완도 정도리 구계등에 있는 몽돌 해변이었다.


깨복쟁이 친구. 내가 자란 마을은 퍽 평화롭고 인심좋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었다. 나의 깨복쟁이 친구들은 20여명이 되는데 1960년대 초반을 지금은 용어조차 생소한 울력이란 것을 하여 타온 밀가루 수제비라도 이웃집에 돌리며 살았다. 죽마고우, 깨복쟁이 친구, 그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립다. 전쟁(인공난. 6.25 사변)은 지났다지만 아직 보릿고개가 남은 시절이어선지 깨복쟁이 친구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일찍 돈벌이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1970년대 초반을 지나 대학교에 다니는 나를  깨복쟁이 친구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였을까? 그런데도 날 따돌리지 않고 함께 해수욕장을 갔으니 그냥 똑같은 친구로 생각하였을까? 1970년대 중반 언제였을까? 깨복쟁이 친구들과 완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해수욕을 즐기게 되었다.


젊음이 한창인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모였으니 어찌 즐겁지 않았겠는가?
10여명이 떼로 몰려 갔으니 명사십리 해변이 온통 우리 것인양 신나게 놀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일이 생겼다. 친구 가운데 현지의 또래 아이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난 술이 얼큰하여 텐트 안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날 흔들어 깨운다.


"형님, 형님, 일어나세요."


아니, 형님이라니? 평소라면 절대 나에게 형님이라고 할리가 없다. 그런데 내게 형님이라고? 잠결에 이상하게 생각하며 일어났더니 오리려 더 큰 목소리로 날 텐트 밖으로 불러 낸다.  텐트 밖으로 나갔더니 명사십리 인근 마을 또래 청년들과 시비가 붙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난 나이가 내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 동네 청년들과 시비가 붙자 날 형님이라고 하면서 불러 내어 무마시키려고 한 것이다.


난 잠결에 얼결에 나왔다가 졸지에 해결사가 된 셈이었다.
그 마을 청년들 앞으로 가면서 제법 나이든 사람인양 하며 무마를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흥분한 그들의 눈에 몇 살 더 나이들어 보인다고 하여 나의 말이 먹혀 들어갈리가 없다. 내 친구들은 나를 앞세워두고 모두 뒤로 물러섰고 내가 앞으로 나서자 그들은 나를 에워 싸더니 사방에서 주먹으로 치고 발길질을 하고, 난 그 몰매를 견뎌야 했다. 겉보기엔 굳건한 척 입으로는 너희들 혼날줄 알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었다.


맷집이라는 게 과연 있긴 있는 것 같다.
난 그들과 함께 주먹질 발길질을 하지 않고 모두 맞으면서 그 중 한 청년의 허리춤을 붙잡고 버티었다.

만약 쓰러지면 짓밟히게 될 것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을 청년들이 요즘 말하는 조폭이거나 깡패들이 아닌 순진한 마을 청년들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응, 이 놈은 한가락 하네~"


하면서 뒷걸음을 치자 모두들 슬슬 뒤로 물러나더니 내게 허리춤을 붙잡힌 제 친구도 둔채 우르르 도망을 쳐 버린다. 그렇게 해서 해결사 노릇을 제대로 하긴 했지만 우리 친구들은 그녀석들이 또 떼로 몰려 올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육지로 나가기로 하였다. 겁이나서 섬에 머무르고 있을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첫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왔다. 육지라고 해봐야 완도이니 역시 섬이다. 그러나 완도에서 배타고 10여분을 가야 닿은 신지도라는 섬보다는 완도라는 큰 섬이 훨씬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해수욕하려고 온 10여명의 친구들로서는 갈 곳이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이 완도읍에서 별로 멀지 않는 정도리의 구계등 몽돌해변이었다.


차는 없었다. 완도항에서 정도리 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당시로선 그 정도 거리를 걷는 것은 당연하였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짐을 바리바리 들고 걸어서 정도리로 향하였다. 거기서 처음 몽돌해수욕장을 만났다. 자갈돌 같이 작은 몽돌부터 바윗덩이 같이 큰 몽돌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몽돌해변과 붙은 숲에 텐트를 치고 몽돌이 파도에 쓸려 자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에 뛰어 들었다.


해변에는 천일염이 아닌 제제염 공장이 있었다. 바닷물을 끓어 들여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태풍이 불어 큰 파도가 몰려오면 공장을 덥칠 기세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 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큰 파도도 바닷가에 이르면 기세를 잃게 되어 그런일은 없다고 하였다. 오히려 게세게 밀려온 파도가 흐트러진 몽돌들은 크기 순으로 정열하여 준다고 하였다.
  그 때 생각에 그 모습이 한 번 보고 싶었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와 그 파도에 휩쓸려 가지런히 정열되는 몽돌해변을 보고 싶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태풍이 불어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실행하지 못하였다.
올해는 태풍이 불면 제백사하고 해변으로 달려 가볼까?
멀리 완도 정도리 구계등 몽돌해변 까지 갈 수 없으면 가까운 어느 바닷가라도 찾아 가볼까?

 

               <완도 정도리 구계등 몽돌해변. 태풍이 불어 큰 파도가 오면 몽돌을 크기순으로 잘 정열하여 준다.>

 

 

여름이 끝나간다.

이젠 나도 피서를 가야하겠다. 아니 더위가 다 지나고 무슨 피서? 사람이 많고 차가 많을 때 가는 것보다 조금 한가하여진 지금쯤이 아직 더위도 남아 있고 피서지에 상인들도 남아 있는데다 혼잡하지 않아 좋다.

 

슬픔은 슬픈채 끝내지 말고 추억은 아름답게 묻으라 하였다.

오늘은 완도 명사십리와 정도리 몽돌해변에 묻은 나의 아름답운 추억을 찾아 보았다.

완도는 멀다. 멀지만 추억이 묻혀 있다. 언젠가는 그곳을 다시 찾아가 아름다움에 잠길 것이다.

(흐르는 노래는 여름노래 15곡 입니다. 끊이지 않고 종일 연주 됩니다. 곡명, 연주기가 필요한 분은 댓글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완도에 있는 청산도와 보길도는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정도리 구계등 몽돌 해수욕장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산좋고 물좋은 우리의 나라다. 봄여름 갈겨울 살기도 좋은 우리나라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보길도, 청산도, 신지도 그리고 완도항에서 멀지 않은 정도리 구계등 몽돌해변과 청해진 장보고 유적지 장도도 가서 보면 과연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제법 멀리 떨어진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전하는 보길도에 까지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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